그것은 예전에도 말했듯이 장르나 소스를 새롭게 창조하는 실험이 아니라 새로운 조합의 실험으로서의 네이쳐 파운드라는 장르다.
드럼 앤 베이스 + 노래 여기까진 많다. (램잼월드)
드럼 앤 베이스 + 기타 + 노래 이것도 많다. (라디오헤드)
드럼 앤 베이스 + 피아노 + 하프 + 현악 스트링 엠비언트 이것도 많다. (골디)
하지만 서태지의 조합은 정확히 말하면 이런 것이다.
드릴 앤 베이스 + 드럼 + 베이스 + 기타 + 피아노 + 하프 + 노래 + 현악 스트링 엠비언트
이런 조합으로 이루어진 다른 음악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느낌은 그다지 새롭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저렇게 복잡한 소스를 쓴 음악과 드럼 앤 베이스 + 노래 이렇게 단촐한 소스로 만들어진
음악 둘다 드럼 앤 베이스 + 팝이라는 기본 토대는 같기 때문이다. 그 수준에서 새로움을 느끼게 만들기 위해서는 새로운 조합만으로는
안되고 새로운 소스로 장르를 창조해야 한다.
드럼 앤 베이스 팝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드럼 앤 베이스에 노래를 얹은 사람들, 그리고 노래에 드럼 앤
베이스를 반주처럼 사용하는 사람들 이렇게 둘로 구분할 수 있다. 서태지는 후자다. 즉 드럼 앤 베이스라는 장르 컨벤션에 머물러 있느냐
그렇지 않고 새로운 뭔가를 위해 그것을 사용하느냐의 차이다.
서태지의 실험성이란 다른 거 다 제껴놓고라도 드릴 앤 베이스 + 드럼 베이스 기타 라는 록그룹의 실연 이거 하나로도 이미 충분하다.
피아노, 하프, 현악 스트링 엠비언트가 어레인지의 수준이라면 드릴 앤 베이스와 드림 베이스 기타의 융합은 단순한 물리적 조합도
아니고 어레인지는 더더욱 아니다. 드럼과 베이스가 드릴 앤 베이스화 되면서 동시에 드릴 앤 베이스는 록음악화된다. 화학적 융합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한 실험이냐는 것이다. 그 화학적 융합의 효과는 무엇이냐는 것. 서태지 모아이에서 그 효과는 간명하게
나타난다. 음악이 좋다는 것. 모든 음들이 총체적으로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고 내가 예전에 레시피로 비유했듯이 그런 황금비율의
조합을 만들기 위해 끝없는 시행착오를 거친 후에 완성된 음악인 것이다.
서태지 신보의 느낌이 새롭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평론가들이 이 음악에 대해 대중적이라고 말한 것과 상통한다. 즉 서태지는 새로운
느낌을 만들려고 한게 아니라는 거다. 익숙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대중적인 느낌. 사운드는 그것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 느낌 자체가
새롭지는 않다. 뭐 시부야삘난다는 사람들도 많고. 하지만 구체적으로 자세히 파고들어보면 새로운 느낌은 안들지 몰라도 새로운 효과는
가지고 있다.
정리하자면 서태지의 모아이는 새로운 조합으로서의 장르인 네이쳐 파운드이다. 그리고 이 조합은 어레인지를 제외하고라도 드릴 앤
베이스와 록그룹 편성의 드럼 베이스 기타로 설명될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조합은 서태지가 최초인 것이다. 그럼 왜 다른 뮤지션
들은 이것을 하지 않았을까. 하지 않은게 아니라 못한 것이다. 그러니까 실험적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선 발상의 새로움, 그리고 그것을
실현한 음악적 마술. 이 두가지 의미에서 서태지의 모아이는 명백히 실험적이다.
록음악 편성의 연주에 전자음을 첨가한 경우는 아주 많다. 서태지도 7집에서 라이브와이어에서 드릴 앤 베이스를 간주처럼 첨가한 바
있다. 그리고 반대의 경우에서 드럼 앤 베이스를 하면서 기타나 노래를 집어넣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서태지는 이 둘 모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서태지에게서는 한 요소가 다른 요소의 서브 텍스트로 나타나지 않는다. 어떤 의미에서 모든 소스는 다
서브 텍스트의 역할을 한다. 메인 텍스트는 서태지의 노래다. 굳이 구분하자면 드럼 앤 베이스를 팝음악의 반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서태지와 가장 유사한 음악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서태지는 거기에 록음악을 융합시킨 것이다.
팝음악을 드릴 앤 베이스와 록, 그 둘 모두를 반주로 사용하면서 추구한다는 것. 이것이 네이쳐 파운드의 독자적인 조합인 것이다. 그리고
음악을 실제로 해보면 알겠지만 이 조합은 결코 그렇게 호락호락하거나 만만한 조합이 아니다. 괜히 실험적이라고 말하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는 록과 드릴 앤 베이스 둘 모두의 장르 컨벤션이 파괴된다. 그리고 그것은 서태지의 노래라는 팝을 위해 반주로서 봉사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꼭 드릴 앤 베이스와 록의 융합이 필요했을까. 그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효과를 위해 조합된 것일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모아이를 직접 들어보면 알 수 있다. 록과 드릴 앤 베이스는 서로 섞이고 구분이 불가능해지는 지점에까지 도달한다. 실제
드럼과 베이스가 드릴 앤 베이스를 이어받아 연주할때 드릴 앤 베이스는 그 안에 융합되어 하이햇으로 자기주장을 한다. 록도 드릴 앤
베이스도 아닌, 장르 컨벤션에서 탈구된 음악이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서태지의 노래를 반주하면서 새로운 장르인 네이쳐 파운드
가 된다. 엄밀히 말하면 이것은 드릴 앤 베이스도, 록도 아니다. 그저 팝이다. 강명석씨가 대중적이어서 실험적인게 아니라 실험적이어서
대중적이다 라고 말한 것의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
즉 서태지가 궁극적으로 실험한 것은 대중성이었다는 얘기다. 대중성이 실험성을 위한
얹혀놓은 치즈케이크가 되는게 아니라 반대로 실험성이 여기서는 대중성을 위해, 대중성을 목표로 복무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음악
자체는 익숙한 것이고 실험성은 그 자체로 자기주장을 존재감을 표시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라디오헤드와 콜드플레이의 차이
이기도 하다. 서태지는 실험성을 티나지 않게 하고 대중성을 위해 그것을 복무시킨다는 점에서 콜드플레이와 비슷하다. 서태지의 모아이
가 새롭게 들리지 않는 이유는 콜드플레이의 2,3집이 기존의 브릿팝과 단절적으로 들리지 않는 이유와 같다. 서태지의 과거의 노래들과
모아이는 단절되지 않는다. 단지 업그레이드된 것이다. 그리고 이 업그레이드는 어디까지나 단절이 아닌 연속성 안에서 작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거기엔 티나지 않는 대중성을 위한 실험들이 존재한다. 단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을 실험으로 인지하지 못할 정도의 교묘함을
가지고 있어서 티가 나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때의 실험이란 노래를 위한, 대중성을 위한 실험이기 때문이다. 이때의 실험이 실험
자체로 자기주장을 조금이라도 하게 된다면 그것은 오히려 실패한 실험이 되버릴 것이다. 서태지 모아이에서 현악 엠비언트 사운드가
그렇듯이 이런 종류의 실험성은 귀로 들려야 하는게 아니라 전체적인 효과로서 몸으로 느껴져야 하는 종류의 실험성인 것이다.
여기서 기존의 드럼 앤 베이스 팝과는 다른 작은 차이가, 모아이 효과라고 할만한 네이쳐 파운드만의 뭔가가 발생하는데 나는 이것을
예전에 이렇게 설명한 바 있다. 장르 컨벤션(예를들면 드럼 앤 베이스)이 노래를 먹어버린 것이 아니라 반대로 노래가 장르 컨벤션을
먹어버리고 반주로 사용하는 거라고 말이다. 서태지 모아이와 드럼 앤 베이스 팝의 차이는 후자가 드럼 앤 베이스를 반주로 사용할때
드럼 앤 베이스라는 장르 컨벤션이 탈구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반면에 서태지의 모아이에서 그것은 록음악과 융합되서 전혀 다른
뭔가로 탈구된다. 기존의 맥락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써드 아이 파운데이션이 자신의 새로운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드릴 앤 베이스를
슈게이징과 결합한 것과 유사한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방법론은 비슷해도 방향성은 정반대다. 서태지는 그것을
자신의 노래라는 팝을 위해, 자신의 감정을 위해 (이것 자체는 서태지의 과거의 노래들에서도 동일하게 남아있는 익숙함일 것이다.)
사용하는 것이다. 그런 노래를 위해 드릴 앤 베이스를 록화하고 록을 드릴 앤 베이스화해서 둘다 메인 텍스트로서의 장르 컨벤션에서
탈구시켜 버린다. 그 둘은 이제 하나의 서브 텍스트로 융합되서 반주가 되서 노래를 보좌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출처] 서태지 모아이의 실험성.|작성자 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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