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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AI
이미 다른 포스트에서도 언급했듯이, 서태지의 이번 8집 싱글은 발매 이전에 항간에 떠돌던
소위 "강렬한 음악"의 추측을 과감히 깬, 실망과 기대가 교차한 음반이었다. 그리고 그 시작은 다름아니라
음반의 첫 번째 트랙인 MOAI였고 말이다.
먼저 이 곡은 서태지가 제시한 장르 혹은 스타일인 "네이처 파운드"의 전형으로 이해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서태지의 설명대로 복잡하게 쪼개진 독특한 음색의 비트들로 가득 찬 싱글 음반 중에서
MOAI만큼 많이 또 다양한 형태로 쪼갠 곡이 달리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MOAI와 관련되어 가장 빈번히 언급되는 것이 바로 드릴 앤 베이스 사운드인데,
사실 드릴 앤 베이스 사운드가 결코 MOAI의 핵심은 아니다. 오히려 기존의 드릴 앤 베이스 사운드는
MOAI를 이루는 요소 중의 하나일 따름이며, 중요한 것은 그 사운드를 다른 악기 사운드들과
어떠한 체계로 조화시켰는가의 방법론일 것이다.
MOAI에서 보여주는 쪼개기의 인상은 일렉트로닉 비트보다는 오히려 다양한 악기의 사운드들이
분열되는듯한 양상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전반부의 시작은 물방울이 물 위로 떨어지는 효과음 그리고
거기서 파생되는듯한 인상의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쌓아가면서 점진적으로 템포를 구성하고,
그 템포 위로 올라타듯이 일렉 기타와 베이스 기타가 개입하면서 서태지의 보컬을 안내할 멜로디를
열어간다. 사실 이 곡에서 가장 섬세한 인상을 보이며 또한 곡의 진행에서 두드러지는 사운드는
일렉트로닉 비트가 아니라 베이스 기타의 연주다. 베이스 기타의 두터운 저음은 날렵한 연주를 통해
서태지의 보컬을 이끄는 멜로디 라인을 만들어갈 뿐만 아니라, 그 연주 위로 끊임없이 뿌려지는듯한
여타 사운드, 즉 일렉트로닉 비트, 일렉 기타, 피아노, 하프 등의 사운드들과 섞이면서 그 자체가
템포 구성의 일부인 듯한 인상을 준다.
비단 베이스 기타 뿐만 아니라, 일렉 기타와 피아노, 하프 역시 그 자체가 분명히 일정한 음과
템포의 흐름으로 연주되면서도, 정작 그것이 다른 종류의 사운드들과 나란히 배열될 때에 그것은 마치
세밀하게 쪼개진 비트와도 같은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곡의 구성이 독특한 것은,
그렇게 다양한 사운드를 동원하여 마치 각각의 순간들이 쪼개진 비트와도 같은 느낌을 갖게 하면서,
한편으로는 각 연주들의 흐름이 서로 묻히거나 뭉치지 않고 뚜렷히 드러나게 했다는 데 있다.
현악기로 비트 효과를 만들어보겠다는 건 일종의 치기어린 유희처럼 생각되기도 하지만,
일렉트로닉 비트로 채워진 흐름 내에 밴드 악기를 비롯한 온갖 성향의 사운드를 몰아넣으면서
현악 연주의 라인까지 살리게 하는 건 사운드 배치를 대단히 세밀하게 고려해야 하는 일일 것이다.
서태지 역시 그러한 점에서 일부러 몇 가지의 절제나 제한을 염두했을 것이라고 본다.
일렉 기타를 보조적인 연주로 제한하고 (세간이 기대했던 "강렬한 음악"의 주문대로 일렉 기타를
활용했다면 일렉트로닉 비트가 그대로 묻혀버리든가, 아니면 KMFDM 스타일의 곡이 되지 않았을까)
둔중한 음의 베이스 기타를 전면적으로 활용한 것 역시 이러한 점에 착안한 게 아닐까 싶다. 또한
이러한 악기의 활용이 락 밴드보다는 재즈 밴드의 분위기를 연상시킨다는 점도 흥미롭다.
물론 이렇게 조밀한 비트의 인상을 준다고 해서 곡의 흐름을 타는 일정한 템포가 없는 건 아니다.
각 연주의 사운드가 쪼개지는 비트의 인상은 규칙적인 공백을 갖는 템포의 역할보다는
오히려 비트의 조밀한 배치로써 전체적으로 부드럽게 흐르는 듯한 멜로디와 같은 효과를 가지며,
그 속에서 템포를 이끄는 역할은 엄연히 빠르고 강렬한 드럼이 해낸다.
베이스 기타가 흐름을 안내하고 보컬이 멜로디를 형성하며 병행되는 규칙적이고 빠른 템포가
드럼에 의해 주도되면서 MOAI에는 일정한 흐름을 갖춘 기존의 음악 체계가 기본적으로 필요로 하는
모든 요소가 다 갖추어진다.
이렇게 각 사운드 요소들이 저마다의 흐름으로 서로 섞이고 조밀하게 쪼개지면서
전체적으로 일관되며 자연스런 흐름을 만들어내는 MOAI의 인상은 마치
모자이크나 스테인드글라스를 연상시킨다. 작은 조각들의 밀도 있는 조합으로 이루어지는 퍼즐이면서,
그 퍼즐의 완성작은 부드러운 곡선과 세심한 배치의 점들, 다채로운 색으로 조화된
유려한 회화와도 같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MOAI의 보컬 멜로디는 전체적으로 밝고 부드러운 발라드 풍이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독특한
점은 보컬 멜로디 자체만으로 보자면 반복적인 후렴구를 제외하고 나머지 부분이 따라부르기가 어색할 정도로
그 진행이 제멋대로라는 것이다. 부드럽게 흘러나오는 노래라기보다는 툭툭 내뱉는 연극의 독백을 연상시킬
정도로 자체적인 멜로디의 흐름이 어색한데, 흥미롭게도 이런 보컬의 멜로디가 비트 감각이 뚜렷한 연주와
융합될 때는 전혀 어색하게 들리지 않는다. 여타 발라드의 구성법처럼 보컬의 멜로디에 맞추어 연주를 편곡한
것이 아니라, 거꾸로 비트 구조와 흐름에 맞추어 보컬의 멜로디와 연주를 동시에 편곡한 것 같다.
서태지의 경우 스스로의 보컬 한계를 나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연주에 융화하는
성향을 보여왔는데, 이번 MOAI의 경우는 그런 경향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전례가 아닐까 싶다.
또한 이 노래에서 흥미를 끄는 게 바로 가사인데, 일단 이 가사에 대해 상응하는 의미를 추상적으로
체계화하여 기계적인 해석까지 내놓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 가사는 쉽게 말하자면 자연 속에
동화되며 자기 성찰을 하는 내러티브인데, '모아이'라는 인형의 개체와 대화하며 자연 속에 있는
자기 존재의 고독하고도 정적인 인상을 진술하고 결정적으로 회귀와 만남의 미래적 메세지로써 끝맺는다.
서태지의 작사 방식이 상당히 자기 몰입적(혹은 자폐적)이라는 것은 이미 5, 6집에서 드러난 바인데,
7집에서 비교적 일상적인 내러티브의 가사를 보여주다가 8집 싱글에서는 다시 폐쇄적이면서도
분열적인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 이 가사는 의도가 명확하거나 집중적으로 실체화된 내러티브보다는,
각 단어들이 제시하는 자연적인 이미지와 함께 성찰, 고독, 소통, 회귀, 만남을 암시하는 의미의
느슨한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가사는 일상적인 언어의 기준에서는 비정상적인 의도로 이해되어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오히려 느슨한 의미 체계로부터 비밀적인 신비로움의 매력을 발산하고
리스너에게 자유로운 해석의 여유를 준다는 점에서 장점을 발휘한다. MOAI의 가사는 일상적 내러티브에
밀착되어 의미가 일괄적으로 분명해지기는 어렵지만, 각 단어들이 제시하는 자연적 이미지의 상상적
조화 속에 고독하면서 정적인 분위기를 일관해나가면서 마지막에 희망적 메세지를 제시한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통일적이며 완성적인 감성을 전달하는 내러티브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MOAI에 대해 이런저런 자세한 말을 두서없이 늘어놓았는데, 사실 이런 분석적인 면모를
감안하지 않아도 MOAI를 즐기고 그것에 몰두하는 데에는 하등 지장이 없다. 굳이 베이스 기타 라인을
의식하지 않고 또 쪼개지는 비트들이 융합되는 인상을 떠올리지 않아도 전체적으로 두드러지는
멜로디 라인과 가사의 내러티브를 따라가면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음악이다. 그리고 아마도 사람의 취향과
관점에 따라 MOAI는 굉장히 정교한 음악으로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온갖 사운드가 복잡하게
뒤얽힌 무질서와 과잉의 형상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취향은 결국 감각의 주름 사이에 맺혀지는
형상을 결정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취향의 기준에서 지금까지 MOAI에 대해 한 많은 말들이
음악에 대한 새로운 고찰의 기반이 될 수 있기를 스스로에게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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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 DREAM
서태지의 첫 번째 싱글 내용 중에서 가장 파격적인 인상을 주었던 음악이라면
단연 HUMAN DREAM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음색이나 음악적 구성 면에서 새롭기에 파격적인 게 아니라
상당히 느슨한 일렉트로닉 비트에 가볍게 들리는 연주 사운드로 채워진 부드러운 흐름의 첫 인상이
아무래도 락보다는 아이돌적인 댄스 음악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MOAI와 같이 극단적으로 온갖 사운드를 쪼개면서 융합시키는 독특한 구성법을 보이는 것도 아니고
T'IKT'AK처럼 락적인 격렬함을 보이는 면모 역시 없기에 이번 싱글 음반에서 HUMAN DREAM의 특색과 입지는
상당히 애매모호해 보인다.
과연 서태지가 처음부터 쫄핑크댄스를 염두해서 만든 곡인지 여부는 모르겠지만, 음악적인 면모에서
HUMAN DREAM은 가장 자기 편한대로 만든 음악이 아닐까 싶다.
물론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자기 편한대로 만들었다는 것이 곧 이 곡의 구성이 엉망이거나
엉성하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 곡은 딱히 독특하지는 않아도 그 자체만으로 충분한 자기 색깔과
완성도를 가지는 음악이다.
시작은 MOAI와 마찬가지로 일렉트로닉 사운드, 소위 8비트 전자오락 소리로 템포를 형성하고
곧이어 베이스 기타와 일렉 기타가 개입하면서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템포 감각을 드럼이 이어받는다.
그러면서 실질적인 곡의 흐름은 밴드 악기가 주도하는 가운데 서태지의 보컬이 이어지는 것이다.
얼핏 들으면 일렉트로닉 비트로 이루어진 듯한 인상이지만, 이미 밝혀진대로 도입과 결미의 8비트 전자오락
소리를 제외하면 비트 구성의 실질적인 내용은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아니라 드럼이다. 밴드 악기를 이용해
일렉트로니카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나가는 게 비단 서태지만의 시도나 영역은 결코 아니지만,
(Squarepusher처럼 서태지의 HUMAN DREAM보다 더 세밀하면서 감각적인 드럼 비트를 선보인 전례는
많다.) HUMAN DREAM의 경우는 그런 비트 구성을 이용해 댄스 성향의 팝 음악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
특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차원에서 이 곡이 부드럽게 그리고 가볍게 들리는 이유를 굳이 꼭 의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건
서태지의 의도대로일테고 또 결과적으로도 충분히 자연스럽게 부드럽다. 드럼 비트는 후렴구와 짧은
전환점의 변화까지 포함하여 일관적으로 진행되며, 그 기반 위에 베이스 기타가 서태지의 보컬 멜로디가
진행될 흐름을 만들어주고 후렴구에서는 빠르게 고조되는 보컬의 분위기를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일렉 기타
연주가 보조하면서 풍성하면서 감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나간다. 언뜻 발랄한 멜로디로 인해 가벼운
인상을 주지만 충분히 내용 있는 사운드의 조합이며 또한 일관적인 흐름 내에서 명확한 기승전결의
구도로써 독특한 감성의 내러티브를 만들어 낸다.
특히 보컬의 가사를 보면, 일부러 통통 튀는 귀여운 분위기를 의도한 게 아닐까 싶다. 자신의 슬픔과 고뇌를
호소하는 메세지 그리고 "뿌찢뿌찢"이라는 의성어인지 의태어인지 정체모를 단어의 사용은 앨범 자켓에
나오는 유아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들어 마치 리스너의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것처럼 생각된다. 그
그 가사의 "Mechanic Super Style", "Byte 10 Billion", "Re-clone" 등의 단어로 보아서는 복제인간 혹은
인조인간의 진짜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고뇌의 독백인 듯 한데, 이런 메세지는 곡 전반의 일렉트로니카적인
인상과 나름 어울리는 것 같다.
이 음악을 두고 대단히 실험적인 시도라고 하기는 힘들어도, 밴드 음악으로써 일렉트로닉적인 분위기의
팝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의를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다소 가볍게 들리는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흔히 말하는 아이돌 댄스 음악과는 충분히 차별되는 밴드 음악으로서 이런 시도를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며, 또한 곡 자체가 제시하는 일렉트로니카다운 신나는 분위기와 섬세한 보컬 멜로디를 즐기는
것으로도 그 음악적 의미는 충분하다.
다만 개인적으로 아쉬운 것은 8비트 전자오락 소리를 좀더 다양하게 활용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다.
이 음반에서 8비트 전자오락 소리를 넣은 곡은 이 HUMAN DREAM 하나 뿐인데, 곡 도입부에서 템포를
구성하고 말미에서 다시 템포를 끝내는 역할 그리고 곡 진행에서 드럼 비트 위로 양념처럼 깔리며 통통
튀는 밝은 분위기를 만드는 것을 제외하면 딱히 독특하고 유기적인 구성의 시도가 없는 것 같다. 물론
그런 시도의 결여가 HUMAN DRAEM의 완성도에 지장을 미치는 건 전혀 아니지만, 8비트 전자오락 소리의
독특한 느낌과 다양함을 떠올려보면 다소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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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KT'AK
일단 T'IKT'AK은 거세고 공격적인 분위기만으로 싱글 음반에서 가장 락적인 인상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전 트랙인 MOAI나 HUMAN DREAM이 만든 부드럽고 발랄한 분위기와 상당히 대조된다는 점에서
그 인상이 더욱 두드러지게 다가온다. 개인적인 추측으로는 서태지가 이 곡을 8집 음악의 흐름에 있어
어떤 전환의 계기로 사용한 게 아닐까 싶은데, 물론 이런 상상은 두 번째 싱글은 보다 격렬한 성향의 음악일
것이라는 기대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이 곡이 만들어내는 첫 인상은 기괴함과 긴장감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상은 곡의 구성 파괴와 같은
실험적 전위성이 아니라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적절한 활용과 보컬의 가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이어지는 클라이막스 연주로 곡의 전개를 열고, 바닥으로부터 스며들어오듯
개입하는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조밀한 조합으로 비트 감각을 구성한 뒤 베이스 기타의 둔중한 연주와
서태지의 보컬이 전개된다. 일정한 일렉트로닉 비트는 베이스 기타, 하프, 보컬 멜로디와 함께 하나의
흐름으로 융합되어 전진적인 긴장감과 기괴한 분위기로써 곧 이어 올 감정의 절정을 준비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더러운 싸움 진실 카운트" 부분에서 마지막 보컬 발음을 비트로 쪼개어 분위기 전환의 계기를
제시하고 뒤이어 "T'IKT'AK"이라는 거세게 튀어나오는 가사의 포인트와 함께 긴장감을 일시에 무너뜨리며
격렬하게 감정을 배설하는 클라이막스적인 분위기에 이른다.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기본적인 템포는
그대로 이어지지만 대신에 드럼을 필두로 한 격화된 락밴드 악기의 연주로써 거센 공격적인 인상을
만들어낸다. 특히 "T'IKT'AK"이라고 외치는 포인트를 통해 변화의 느낌과 함께 집중력을 살리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클라이막스를 끝낸 뒤에 역시 일관적인 템포 내에서 잔잔한 분위기로 돌아가서 긴장감을 쌓고
또 한번 공격적인 클라이막스를 반복한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피아노 연주와 현악 연주의 조합으로
분위기의 완급 조절을 한다. 그렇게 완화된 분위기에서 "Destroy the world"라는 전환점을 통해
다시 공격적인 클라이막스를 진행하고, 그 뒤에는 곡 도입부와 동일한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조합으로
템포를 끝냄으로써 최종적으로 안정적이며 완결된 곡 구도를 만들어낸다.
세간에는 이 곡이 Linkin Park의 스타일과 유사하다고 알려지기도 했는데, 그런 말이 나오는 것도
결코 무리만도 아니다. 일정한 비트와 잔잔한 연주로써 긴장감을 형성하고 클라이막스에서 거센
연주와 보컬로 몰아붙이는 스타일은 Linkin Park의 음악에서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곡 구성이
딱히 LInkin Park 특유의 스타일인 것도 아니며, 오히려 락 음악을 포함한 대중음악에서
흔히 나타나는 보편적인 구도다. 그나마 Linkin Park 음악과의 공통성을 꼽자면 Linkin Park의
음악에서 두드러지는 힙합 비트가 T'IKT'AK의 일렉트로닉 비트와 어느 정도 비슷한 인상을 준다는 것 정도다.
하지만 그건 비슷한 면모이지, 그걸 갖고 모방이나 표절 운운하는 건 아무래도 온당하지가 못하다.
특히나 모방, 표절이란 어디가 유사하게 느껴지느냐가 아니라 엄연히 어디가 동일한가의 문제인데,
최소한 특정한 기교의 템포, 멜로디가 확실히 동일하거나 유사할 때 모방, 표절을 운운해야 실질적인 설득력을
가지게 되는 법이다. 단순한 비트 감각이 유사하게 느껴진다고 모방이나 표절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에게는 아무래도 힙합이나 일렉트로니카 음악을 듣지 않는 게 속편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Linkin Park 스타일과 관련해서 연상되는 T'IKT'AK의 독특한 점은 곡 진행 내내 일정한 템포가
그대로 유지된다는 점일 것이다. 엄연히 클라이막스가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템포가 급격히 빨라지는 게
아니라 기존의 템포를 유지하면서 일렉트로니카 사운드의 음색이 보다 강렬해지고 락밴드 사운드가
거센 스타일로 개입하며 격렬하고 자극적인 인상의 클라이막스를 만든다는 것이다. 곡의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한 템포로 흐름을 일관하는 구성은 락 장르보다는 일렉트로니카의 구성을 연상시키지만,
그럼에도 락 사운드 특유의 것에 가까운 클라이막스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나름 흥미로운 음악적 일면을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곡이 싱글 음반 내에서도 유독 그 인상이 독특한 것은 여타 곡과 대조되는 특유의
긴장감과 공격적인 분위기 때문인데, 또한 이런 분위기는 인류문명의 종말을 암시하는 시니컬하면서도
비밀스런 가사와도 어울린다. 물론 명확한 인과적 흐름을 갖춘 내러티브가 아니라는 점에서는 MOAI의
경우와 동일하다. T'IKT'AK의 경우는 그렇게 소통적으로 애매한 가사의 진행을 곡 분위기의 전개와 유기적으로
어울리게 함으로써 메세지를 감각화한다.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조합으로 기괴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가운데 멸망과 음모를 암시하는 단어를 나열하며 긴장감을 만들어나가고, 락적인 분위기의 강렬한
클라이막스에서는 "T'IKT'AK"이라는 시계침이 움직이는 의성어를 통해 미래적이고도 긴박한 절정의 느낌을
이루어낸다. 물론 이런 멸망과 음모의 메세지는 딱히 구체적인 현실비판의 의도라기보다는 SF적 상상의
감성에 가까워 보이지만, 어차피 즐기는 감성의 세계에서 비판이면 어떻고 상상이면 어떤가. 그 자체를
통해 무언가를 느끼고 즐거우면 그것으로 충족되는 것이다.
서태지의 이번 음반 활동 직전에 여러 홍보물을 통해 미스터리 테마가 알려졌고 또한 음반 구성 내에도
모아이 석상, UFO, 날개 달린 태아 이미지 등을 통해 미스터리 특유의 인상을 제시했는데,
T'IKT'AK은 그런 독특한 분위기의 연장선상에서 즐기면 되는 음악이다. 음악의 주제에 있어
이런 테마를 선택한 것은 서태지 본인의 취향이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사회 비판"의 트렌드가
대중 음악시장에서 큰 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일종의 대안적 트렌드로서 개발된 게 아닐까 싶다.
물론 이런 미스터리 테마를 단순히 일시 충격적이며 치기어린 소재로 전락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이런 소재들에 독특한 매력을 부여할 섬세한 음악성이 필요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 점에서 서태지의 첫 번째 싱글은 나름 활동의 시작으로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음악 자체의 완성도 면에서는 딱히 나무랄 데가 없으며, 또한 '네이처 파운드'라는 나름 독특한 스타일의
음악 구성법을 보여주기도 했고 그러한 음반의 음악성에 미스터리 테마를 조화시킨 것도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다만 그런 성공적인 시작을 어떻게 이어나가고 또 어떻게 마무리지어서 유종의 미를 거둘 것인가가
바로 앞으로의 과제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서태지 스스로가 직접 제시한 미스터리 테마와 네이처 파운드의
방법론에 어떤 음악적 내용과 변화를 가미하여 얼마나 풍부하고 독특한 스타일로 완성해낼지
여하에 달려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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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muda[Triangle]
사실 이 곡은 원래 8집 첫 번째 싱글 음반에는 포함되지 않은 곡이며
서태지폰의 서비스 차원에서 공개된 곡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곡 자체의 완성도가 그렇게 떨어지지 않고
또한 뮤직비디오가 공개되는 등 8집 싱글 활동의 분명한 연장선상에 있는 곡이기 때문에
첫 번째 싱글 곡으로 분류해서 리뷰를 올린다.
이 곡의 사운드 구성은 기본적으로 일렉 기타, 베이스 기타, 드럼으로 이루어진 기본 락밴드 악기 연주에
신디사이저 사운드가 부가적으로 활용되고 있는데, 8집 싱글의 다른 곡들과 뚜렷한 차이는 다름 아니라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사용이 자제되면서 보다 보편적인 락밴드 음악의 인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혹자는 이 곡에 대해 서태지가 제시한 장르 혹은 스타일인 "네이처 파운드"의 개념을 적용하기도 하는데,
사실 이 곡의 구성을 딱히 새로운 장르나 스타일로 규정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을까 싶다. 기본적인 인상은
팝펑크이며, 굳이 서태지가 제시한 네이처 파운드 개념과의 관련성을 찾자면 드럼 비트가 상당히 빠르다는
점 정도가 아닐까.
물론 이 곡에 대해 네이처 파운드와 같은 새로운 개념을 적용하지 못하고 팝펑크라는 기존의 장르 영역으로
분류한다고 해서 이 곡의 음악성이나 가치가 객관적으로 폄하되는 건 결코 아니다. Bermuda[Triangle]의
의미와 가치 판단은 그 곡 자체의 완성도 그리고 그러한 곡의 구도에 리스너가 몰입되는 감상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 "새롭다"는 음악 외적인 혹은 어떻게 보면 상당히 정치적인 명제에 의해 엇갈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이 곡의 구도를 이해하는 데 있어 굳이 어려운 분석이 필요할 까닭도 없어 보인다. 일렉 기타가 곡을
열고 드럼과 베이스 기타 연주가 추가되면서 도입부를 만들며 완전한 밴드 음악으로 곡이 진행된다.
가볍고 발랄한 멜로디 라인을 따라 연주가 흐르다가 후렴구 직전에는 짧은 공백에 비트 효과를 주어 박력
있는 전환점을 제시하고 좀더 빠른 템포로 동일한 밴드 악기 구성에 피아노 연주를 추가하며 도전적인
멜로디의 후렴구를 박진감 있게 진행한다. 후렴구가 끝나는 부분은 소위 8비트 전자오락 소리인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쪼개지는 듯한 인상의 빠른 템포로 진행하여 후렴구로 인한 긴박한 기분을 완화시키는 전환점을
만든 뒤 도입부에 해당하는 연주를 반복한다.그 반복 부분은 빠른 드럼으로 마무리지은 뒤 다시 한번 멜로딕한
진행에 후렴구로 향한다. 그렇게 후렴구를 다시 반복하여 절정으로 향하는 긴장의 분위기를 만든 뒤 잔잔한
일렉 기타 연주로 짧은 완급 조절을 거치고 곧이어 다시 거세게 몰아치는 밴드 악기 연주에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조합함으로써 뒤흔들리는 듯한 인상의 사운드를 만들어낸다. "아름다운 존재 모순된 바다"로
형성되는 절정은 "풀릴듯한 내 안의 퍼즐"에서 멜로디의 템포에 따라 악기 사운드를 차례로 빼며 급격하게
잔잔해지는 분위기를 만들어서 피아노 소리와 일렉트로닉 비트의 반주로써 조용한 마무리를 짓는다.
이 곡의 구도는 어떻게 보면 미완성이 아닐까 싶은 의문이 드는 면모를 가지고 있는데, 다른 게 아니라
후렴구 직전 등의 템포 속도가 전환되는 부분에서 멜로디가 짧게 끊기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길이가
짧은 팝펑크로서 그 내용이 통일적이며 집중적인 인상의 멜로디라는 느낌을 주며 절정으로 향하는 흐름을
잃지 않고 있는데, 이는 곡 자체의 진행 템포가 원체 빠르고 전체적으로 일관적인 곡 흐름의 명확한 기승전결
구도에 따라 끊어지기에 짧은 공백으로 흐름이 끊어지는 건 오히려 포인트적인 박력의 효과와 함께 멜로디와
템포의 전환을 자연스레 이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또한 곡의 종결에서 뒤흔들리는듯한 인상의 격렬한 절정을 만들다가 갑작스레 맑고 조용한 사운드로
끝맺는 것은 그 말대로라면 언뜻 너무 급격한 흐름의 기복인 것처럼 생각될 수도 있으나, 정작 곡을 들어보면
그 흐름은 전혀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런 것으로 느껴진다. 이는 절정에서 긴박했던 감정이 배출된 뒤
카타르시스의 잔잔한 안정과 가벼운 여운을 느끼는 보편적이며 자연스런 심리의 서사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흥미로운 건 이 곡이 가볍고 발랄한 팝펑크 스타일로서 7집 7th issue를 연상시키면서도 트윈 기타를
운용하지 않고도 사운드가 꽉 채워진 듯한 인상을 준다는 점이다. 그건 곡 자체가 워낙 빠른 템포의 발랄한
멜로디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빠른 드럼과 감각적인 베이스 기타 연주로 일렉 기타가
부족할 수 있는 부분을 지속적으로 채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락사운드를 만들면서 공백감과 지루함을
피하는 건 프로 뮤지션으로서의 기본 센스이자 역량이긴 한데, 서태지로서 트윈 기타를 운용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하면 발랄한 분위기이면서도 사운드 상으로 꽉 채워진듯한 인상의 락 음악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나름의 고민과 연구가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 곡은 가사 면에서도 나름 흥미로운데 그 가사의 내용적인 측면, 즉 이미 알려진대로 성(性)에
대한 내용이면서 외설적인 느낌이 없는 감각적인 가사라는 점도 독특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곡이 리스너로
하여금 감상적으로 몰입시키는 게 곡의 흐름으로 인한 감정의 기복이 가사가 던지는 이미지 및 의미와
조화되면서 가사의 메세지가 음악적으로 감각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곡 초반부의 "여린 심박이 서로 다른
템포를 맞추고 있고"라는 가사는 템포가 빠르고 드럼 비트가 두드러지는 이 곡의 전체적인 인상과 어울리며,
"천상에서 그대가 눈뜰 때"로 시작하는 후렴구의 가사는 전환의 분위기를 가진 멜로디와, 그리고 "이 밤에
엄숙한 비겁자의 하늘과 나의 섬들 사이에"의 부분은 "하늘의 비겁자"라는 권위적인 존재에 맞서는 듯한
도전적인 멜로디와 어울리면서 그러한 가사에 리스너가 동화될 수 있도록 음악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가사와 음악의 조화가 극치에 이르는 것은 역시 절정에 해당하는 "이 성스러운 바다 뒤바뀐 섬
타락한 마음 아름다운 존재 이 모순된 밤" 부분일 것이다. 밴드 악기와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동원하여 만든
급격한 긴박감과 함께 뒤흔들리는 듯한 인상의 사운드는 그 가사와 어울리며 정확하고 자연스런 절정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뒤를 잇는 "풀릴듯한 내 안의 퍼즐"은 가사 그대로 문제가 해결된 뒤의 만족과
안정감이 음악의 잔잔한 마무리와 조화된다.
결론적으로 이 곡은 섬세한 멜로디에 빠른 템포로 발랄한 분위기를 만들면서 꽉 짜여진 듯한 사운드로
풍부한 인상을 주는 곡이다. 가사가 전달하는 성에 대한 메세지를 진지하게 언술적으로 고민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고조되는 곡의 분위기와 격렬한 절정 그리고 그 뒤의 카타르시스라는 일련의 흐름을 따라 감정의
기복을 짧게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리스너는 이 곡의 메세지를 그대로 느끼고 이해하는 것이며, 또한 이 곡의
가치와 의의 역시 그러한 차원에서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음악 외적으로 한 가지 흥미로운 의문점은, 과연 서태지가 왜 이 곡을 첫 번째 싱글 음반에 넣지 않고
"서태지폰"을 위한 서비스라는, 마치 싱글 음반 내용에 비해서는 별로 중요치 않은 부가적인 음악인 것과 같은
인상을 주며 공개했는지 그 이유이다. Bermuda[Triangle]은 소위 한국 음악 시장에서 성공하기 어려운 락
장르에 포함되기는 하지만 오히려 빠르고 발랄한 분위기로 젋은 세대에게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곡처럼
생각되는데 말이다. 부드러운 멜로디를 가졌지만 사운드 상으로 복잡한 인상을 주는 MOAI나 얼핏 유치하게
들릴 수 있는 HUMAN DREAM, 기괴한 분위기와 비관적인 메세지로 도저히 한국 시장에서 어필할 수 없는
T'IKT'AK에 비한다면 Bermuda[Triangle]은 충분히 대중 음악 시장에서 선전할 수 있는 곡이 아닐까 싶은데도,
서태지는 Bermuda[Triangle]을 대중 음악 시장보다는 팬들을 위한 서비스 차원에서 공개한 것이다. 그 이유를
추측할 만한 객관적인 정황을 모르니 함부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개인적인 생각에 서태지는 대중 음악
시장에서 Bermuda[Triangle]보다는 MOAI가 관심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던 게 아닐까 싶다. 서태지
자신이 제시한 네이처 파운드 스타일로는 아무래도 다른 곡들보다 MOAI가 가장 두드러지기에 자신의 음악적
실험과 그 성과를 알리고 싶은 차원에서 다른 곡보다 MOAI를 알리는 데 주력하면서 Bermuda[Triangle]을
일부러 슬며시 숨겼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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