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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0자 원고지 100매 분량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조리 읽지 않을 것이라면 읽지 않는 편을 권한다.
서태지 인터뷰 전문: 2008년
8집 첫 싱글을 낸 서태지를 지난 9월 29일에 만났다. 지난 2004년 3월에 그를 만나고 처음이니 4년 6개월만의 인터뷰였다. 이번에도 서태지 인터뷰는 성사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서태지컴퍼니측은 인터뷰 요청 때마다 “알았다. 노력하겠다”고 말했으나 대답은 오지 않았다. 결국 9월 27일 연락을 받았다. 9월 29일 오후 8시에 서태지컴퍼니에서 보자는 것이었다.
서태지는 8시를 조금 넘겨 인터뷰 장소인 회의실에 들어왔다. 얼굴이 약간 부스스했고 피부는 까칠해 보였다. 그와 오랜 시간 이야기를 했으나 역시 신문에 그 모든 내용을 소화할 수는 없었다. 지면 특성상 음악 이야기를 많이 쓸 수가 없었고 사람과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들 위주로 기사화해야 했다. 4년 6개월 전 인터뷰 때 인터뷰 전문을 인터넷에 올려 서태지 팬들이 즐거워했던 기억이 났다. 그렇게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인터뷰 내용을 내 수첩 속에 가둬두는 것 역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를 시작하기에 앞서 MP3 플레이어를 꺼냈다. 이왕이면 전부를 녹취해서 서태지의 말투까지 소상하게 써주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것은 순진한 생각이었다. 서태지는 녹음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방송 인터뷰도 하는데 녹음이 안되나요?” 하고 묻자 “방송은 말할 때 아예 방송용으로 말해요. 녹음기가 있으면 편하게 말하지 못해요” 라고 답했다. MP3 플레이어를 거둘 수 밖에 없었다. 덕분에 수첩을 20페이지 넘게 채웠다. 가능한 한 서태지의 모든 말들을 담으려고 했으나 아마도 빠지거나 잘못 적은 부분도 있을 것이다. 다음은 (수첩에 적힌) 인터뷰 전문이다.
- 회사가 언제 이리로 이사했어요?
“2년쯤 된 것 같은데요. 그때쯤 한국에 몰래 왔거든요. 7집 활동 끝내고 인도하고 미국 여행을 좀 했고, 여기에 스튜디오 연습실 다 작업 끝났다고 해서 들어왔어요. 그러니까 여기가 ‘스튜디오 T’죠. 이번엔 여기서 음반작업을 다 했어요.”
- 심포니 공연은 잘 봤습니다.
“어떠셨어요?”
- 전반적으로 좋았어요. 기대했던 것보다는 사운드가 안좋았죠. 어떨 땐 보컬이 너무 크고, 후반부엔 보컬이 잘 안 들리기도 하고?. 아무래도 클래식과 록을 함께 한다는 데 쉽지 않겠죠.
“영국 엔지니어팀과 우리쪽에서 원하는 사운드가 완전히 달랐어요. 우리는 밝고 댐핑(damping)이 있는 사운드가 필요했고? 클래식은 완전히 달랐어요. 서로 양보해서 절충안을 찾은 게 이번 사운드였어요. 게다가 상암 자체가 록 사운드를 잡기 어려운 곳이에요. 그래도 음향점수가 70~80점은 되지 않았나 싶어요.”
- 합창단이 깜짝 출연해서 놀랐습니다. ‘컴백홈’ 때는 무척 감동적이었어요. 반면에 ‘교실 이데아’ 때는 합창단이 노래를 방해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클래식 현악 파트의 디테일이 록 사운드에 가려진 것은 좀 아쉬웠습니다. 그건 딥퍼플이나 메탈리카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싶어요.
“그래서 믹싱을 따로 해서 그런 부분을 보완할 계획입니다.”
- DVD로 내나요?
“아니오. 방송할 때 말이죠. DVD나 CD는 확정은 안됐는데 가능하자면 내자는 쪽이에요. 사운드를 제대로 잡아야겠죠.”
-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은 오랜 꿈이었죠?
“‘영원’ 만들 때만 해도 클래식 교향곡에 보컬을 넣어서 디즈니 영화음악 같은 장엄한 음악을 해보고 싶었어요. 이후에 메탈리카 ‘S & M’도 보고 ‘언젠가는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8집을 내면서 뭔가 큰 공연을 하고 싶었어요. 7집 때 블라디보스토크에 간 것처럼 실험적이든 새로운 시도든, 뭔가 색다른걸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클래식과 협연을 하기로 마음 먹은 건 음반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결정한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년 전쯤인 거죠. 당시엔 어떻게 해야겠다는 건 없었고, 오케스트라를 일단 섭외해보자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톨가씨 얘기는 그때부터 했어요. 톨가 말고는 내 음악을 제대로 이해해 줄 사람이 없다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공연기획사와 계약할 때부터 ‘톨가가 섭외되면 공연을 하고 아니면 이 계약은 무효다’라고 계약서에 쓸 정도였어요. 톨가의 화성이 맞을 것 같았어요. 로열 필과 하게 된 건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와 메탈리카가 했던) S & M도 좋긴 하지만 톨가가 로열 필과 친한 점도 있고 해서 그렇게 됐어요. 꼭 로열필과 해야겠다고 작정했던 건 아니죠. RPO(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RPCO(로열 필하모닉 콘서트 오케스트라) 논쟁이 있었던 걸로 아는데, 제 음악에 박자 맞추기로는 RPCO가 더 낫더라고요. 톨가와 함께 했을 때 연주가 좋았던 사람들 위주로 모았고요. 그리고 나머지는 RPO 멤버들이에요.”
- 딥퍼플이 로열필, 런던필과 했던 공연이나 메탈리카가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와 했던 것을 라이브로 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지만, 라이브 음반 역시 그다지 찬사를 받지는 못했죠. 록과 클래식의 협연이란 게 그만큼 어려운 게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파트별 수석연주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객원연주자로 오케스트라가 구성됐다고 하죠. 오케스트라가 크로스오버를 할 때 연주자가 바뀌는 건 드물지 않은 일 같습니다만.
“그러게요. 아마도 클갤(디씨인사이드 클래식 갤러리)에서 넥스트 사건을 고려해서 RPO에 대한 의문점을 찾아 올리고 거기에 루머를 반 섞고 해서 그 뉴스가 뜬 것 같은데요. 그래서 결국 해당 매체에서 사과를 하기도 했고요.(이것은 한 인터넷 매체가 ‘서태지 공연측, 떳떳하면 계약서 공개하라’는 기사를 써서 논란이 인 뒤, “서태지 심포니에 서는 오케스트라는 RPCO로 확인됐다. 그러나 가짜 로열필하모닉이 오는 것 아니냐는 뉘앙스로 보도된 것에 대해 사과한다”는 글을 올린 것을 뜻한다. RPO는 세계적 명성을 누리는 오케스트라이지만 RPCO는 그에 못 미친다. 비유하자면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쯤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서태지측은 보도자료에서 ‘로열필하모닉’이라고만 표기했지만, 이는 RPO로 오해되기 쉬운 표현이다.)”
- 톨가 카쉬프는 클래식계에서는 무명에 가까운 사람인데, 굳이 이 사람을 택한 이유가 있나요.
“어차피 클래식 씬에서 유명한지 아닌지 여부는 중요한 변수가 아니었어요. 톨가는 약간 이단아 같은 존재예요. 만나보니까 나하고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음악 이력에서 나와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성공하고 욕도 먹고요. 얘기하면 동질의식도 느끼고.”
- 욕을 먹는 게 똑같다니오?
“욕 먹는 건 옛날에 록 할 때도 그랬어요. 삼표음악 들으면 저런 거 왜 듣냐고 형들이 욕했죠.”
- 공연 얘기를 좀 더 해보죠. 영상이 무척 좋던데, 직접 아이디어를 내나요.
“물론 제가 직접 회의에 참여하고 아이디어를 내죠. 영상은 이번에 (있는 걸 갖다 쓰지 않고) 새로 제작을 많이 했어요. VJ팀이 만들어서 ETP 때도 해보고 결과가 좋아서 조금 더 해봤어요. 회의에는 물론 참석하죠. 처음에 우리 자료를 주고 느낌을 설명해주죠. 그러면 그분들이 시안을 가져와서 보여줘요. 그러면 미세 조정을 하죠.”
- 클래식 협연 꿈은 어찌됐든 이뤘네요. 만족하나요?
“클래식 협연 꿈은 완전히 이뤘죠. 만족도는 물론 100%는 아니죠. 그리고 100%가 되면 안되겠죠. ‘영원’ 때는 시행착오를 많이 했어요. 그때 편곡을 아는 분을 소개받아서 했는데 굉장히 잘 됐어요. 셋째 할아버지가 음대 총장이셔서(그의 셋째 할아버지 정희석씨는 연세대 음대 학장이었다) 소개를 받았어요. 제가 클래식을 전혀 모르니까요. 일본팀이 영원을 편곡했다는 소리도 있었는데, 일본팀이 연주를 한 거죠. 지금 들어도 편곡과 레코딩이 모두 다 잘됐다고 생각해요.”
- 로열 필 협연 연습은 어떻게 했습니까. 영국에 가서 며칠 한 걸로는 안될텐데요.
“이번엔 그쪽(영국)에서 미디로 받은 걸 밴드에 얹혀서 연습했어요. 그러니까 가상의 오케스트라가 우리 연습실에서 함께 연습한 셈이죠. 어느 정도 연습이 됐을 때 런던으로 간 거예요. 처음엔 런던 리허설을 할 생각이 없었어요. 그런데 가상 연습을 하다보니까 점점 욕심이 생긴거죠. 그래서 영국에 가게 됐어요.”
- 런던에서 연습은 얼마나 했어요.
“이틀간 하루 12시간씩 했어요. 톨가가 단원들을 아주 잡더라구요. 특히 관악 파트는 너무 지쳐서 톨가가 ‘살살 불어라’고 할 정도였어요.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나중에는 재미있었어요. 잘은 모르겠지만 단원들이 처음엔 ‘동양에서 온 사람이구나’ 하는 정도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나중에는 재미있다는 느낌을 받은 모양이더라고요. 단원들 중에도 록을 좋아하는 젊은 단원들이 있어서 ‘음악 정말 죽인다’고 악수를 청해오기도 하고.”
- 런던 연습장면 동영상을 보고 팬들끼리 ‘대경성’이다, ‘컴백홈’이다 알아맞추기도 하더라고요.
“아, 제가 점프하는 거요? 그거 컴백홈이에요.”
- 단원들 중에 서태지를 이미 아는 사람이 있던가요.
“아니오. 아마 서태지가 누군지 전혀 모르겠죠.”
- 싱글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모아이’는 오리지널과 리믹스 버전의 느낌이 각각 다른데, 혹시 오리지널에서 피아노를 비롯한 특정 트랙들을 많이 들어낸 게 리믹스 버전 아닌가요? 그래서 ‘모아이’ 창작과정이 드러나도록 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아니오. 그 두 곡은 보컬 빼고는 인트로 비트만 같고 완전히 다른 곡이에요. 1번 곡은 각 악기 파트를 모두 리얼악기로 연주했고, 4번 곡은 일렉트로니카죠. 1번은 네이처 파운드, 4번은 일렉트로닉 네이처 파운드라고나 할까요. 리듬을 계속 쪼개서, 드럼만 해도 무척 복잡해요. 끊임없이 고스트(ghost·드럼의 하이햇을 들릴듯 말듯 하게 연주하는 것)가 등장하죠. 편곡도 피아노 기타 베이스가 모두 무척 복잡해요. 그래서 1번 모아이는 뭔가 복잡하게 들리죠.”
- 그렇군요. 저는 1번곡의 트랙 수가 훨씬 많지만 그것이 모이니까 뭔가 좀 단순하게 들리고, 4번 곡은 트랙수가 적지만 극도로 잘게 쪼개진 드럼 앤 베이스의 형식을 쓰고 있어서 오히려 복잡하고 난해하게 들리던데요.
“그 반대로 들린다는 사람들이 더 많던데요. 일렉트로니카로 만든 4번 곡이 더 단순하게 들린다는 거죠. 채널 수 역시 4번 곡이 더 많아요. 4번은 보컬과 베이스 일정 부분 빼고는 리얼 악기가 없어요. 4번은 곡에 공간을 많이 주고 여유가 있고 숨을 쉴 수 있도록 만들었어요. 숲의 청명함을 표현하려고 했죠.”
- 그럼 이번 클래식 편곡까지, 모아이는 세 개 버전이 있는 거군요.
“그래도 곡의 주제는 똑같아요. ‘여행’과 평온함을 찾을 수 있도록 의도했어요.”
- 박자를 그렇게 잘게 쪼개면 드러머가 고생이 많았겠네요.
“혜승은 와서 한 달간 연습만 했어요. 그리고 녹음 들어갔지요. 고생을 정말 많이 했어요. 그 대신 제가 맘 편하게 해주고 될 때까지 녹음하고, 되면 이야기하라고 했어요. 바세린 드럼(최현진)은 연습을 더 했어요. 제가 볼 때 우리 곡 드럼 칠 사람은 혜승하고 현진 밖에 없어요.”
- 그 두 사람이 국내 최고란 말로 들립니다만.
“그럼요. 장담할 수 있어요.”
- 어떻게 장담을 할 수 있죠?
“이번에 오버와 인디 합쳐서 드러머는 거의 다 봤다고 할 수 있어요. 저랑 현진은 언젠가 우리가 세계 1등을 하자고 했어요. 실력이라기보다 연주스타일로 봐서는 지금 우리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이 혜승과 현진 밖에 없어요. 혜승은 한 달 연습하고 1주일간 녹음하고 피아로 돌아갔죠. 현진은 오디션 10명쯤 보고 뽑았어요. 녹음 때는 오디션 볼 필요도 없이 혜승이 할 수 있느냐 없느냐만 판단해야 했죠. 혜승이 고스트가 정말 탁월해요. 그루브도 외국 연주자 같고. 혜승이 못 치면 또 외국에서 구해야 하는 거죠. 지난번 헤프처럼.”
- 헤프는 지금 어떻게 됐나요?
“우리 밴드는 늘 앨범 한 장씩 계약하거든요. 지난번 음반 활동 계약 끝나고 미국에 돌아갔죠.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에요.”
- 최현진씨는 연주를 금세 잘 하던가요.
“현진은 한 달동안 연주스타일만 고쳐야 했어요. 그래서 ‘매일 여기 나와서 연습할 수 있느냐’고 물으니 ‘할 수 있다. 하루 종일 드럼만 치는 게 내 꿈이다’라고 했어요. 그리고 나서 여기서 먹고자면서 연습했어요. 한 달 넘게 연습하고 이젠 됐다고 했죠. 현진은 전공이 재즈예요. 현진이 연습 끝내면서 둘이 얼싸안고 말했죠. ‘우리가 일단 한국 최고는 된 것 같다. 이제 세계 최고가 되자’고 말이죠.”
- 인디에 있는 사람들을 잘 알고 지내나요? 어떻게 무명 밴드에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죠?
“(서태지는 이 질문을 잘못 알아들었는지 다른 대답을 했다) 탑, 락 때도 그랬고 다들 서태지가 인디 빼가서 인디가 망한다고 하는데, 가슴 아픈 얘기예요. 서태지에 합류했다고 인디가 망한다면 그건 가슴 아픈 일이죠. 빼가는게 아니라 정말 실력있고 할 수 있는 사람들과 작업을 하고 싶은 거예요. 준영도 그렇고. 석중은 ‘독고다이’죠. 딴 작업은 안 하고 우리 일만 했어요.”
- 베이스 주자도 실력이 뛰어난 것 같던데요.
“준영은 연주는 최고예요. 그러나 비주얼과 액션이 좀 더 필요했어요. 워낙 연주가 좋아서 일단 하기로 하고 나머지를 보완했죠. 액션은 자신만의 기본 필이란 게 있어요. 라이브에서 액션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 그럼 무대 위 액션도 서태지씨가 직접 디렉팅을 하나요?
“액션은 꽤 자율적이에요. 연주는 자율적이지 않지만요. 연주가 그런 건 편곡자와 실제 녹음자가 저니까. 또 선배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아무래도 제가 디렉팅을 하게 되죠.”
(서태지 이번 싱글을 MP3로 변환하려고 하자 CDDB에서 ‘Helter Skelter’라는 곡명이 떴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이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이 또 있었다. ‘Helter Skelter’는 비틀스 화이트 앨범에 실렸던 실험성 짙은 노래여서 이것을 서태지의 의도가 담긴 그 무엇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최근에 보니까 ‘Helter Skelter’라는 글램록 밴드가 있었고, 그들의 앨범에 실린 곡들이 서태지 새 싱글에 실린 네 곡의 MP3 버전으로 바뀌어있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질문을 서태지에게 했으나, 매우 허탈한 대답을 들었다.)
- 헬터 스켈터는 무슨 의도를 갖고 MP3에 이름 붙인 건가요?
“예? 그게 뭐예요?”
- 이번 음반을 MP3로 바꾸려면 곡명이 ‘Helter Skelter’의 노래들로 나오잖아요.
“처음 듣는 이야긴데요? 그거 무슨 fake file 같은 건가요?”
- 아니...저는 당연히 이게 서태지씨가 의도한 무엇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오. 전혀 처음 듣는 얘기예요. 인터넷 DB에 보면 길이가 똑같은 다른 곡 제목이 붙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그런 종류 아닐까요?” (결국 helter skelter에 얽힌 비밀은 아직 풀리지 않았다)
- ‘버뮤다 트라이앵글’이란 신곡의 일부가 인터넷에 있더라고요. 그건 다음 싱글에 실릴 곡인가요.
“그건 KTF용 신곡을 염두에 두고 만든 거예요. 다음번 싱글이나 정규앨범에 들어가게 될 거예요. 아직 어느 앨범에 넣을지는 결정 못했어죠. 컨셉은 역시 8집 전체의 컨셉과 같은 노래고요. 7집 때 Watch out도 먼저 만들어놓고 나중에 공개한 거죠.”
- 다음 싱글은 언제 낼 계획인가요.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아마도 올 연말 연초쯤이 될 거예요. ‘휴먼 드림’에도 기대를 걸고 있거든요. 좀 대중적인 멜로디이고?. ‘휴먼 드림’ 반응이 좋으면 다음 싱글이 조금 더 늦어질 수도 있고요. 다음 싱글은 첫 번째 싱글과 곡 수가 비슷할 거예요. 정규 앨범 시기는 다음 싱글보다 더 미지수예요. 활동하다가 심심해지면 이렇게 해볼까 하기 때문이죠. 프로모션은 시기가 중요하다는 걸 알지만, 시간에 얽매이다 보면 음악하는 게 재미 없어져요. 거기서 벗어나면 편안하고 행복해져요. 그게 음악하는 사람으로서 좋은 점이에요. FM 비즈니스에서 벗어나보자 하는 것이죠.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에도 어느 날까지 새 음악을 내놓아야 한다는 게 굉장히 스트레스를 줬어요.”
- 그렇게 계약이 돼 있었던 건가요?
“아니오. 계약은 문제가 없었어요. 팬들과 약속을 그렇게 한 거죠. 1집 때는 활동을 끝내면서 6개월 만에 새 음반을 내겠다고 했고, 이게 너무 짧아서 그 다음은 8개월로 조금 늘였죠. 그때는 ‘방송활동 중단’이란 게 큰 뉴스였어요. 1집은 아무 부담 없이 냈는데 방송활동을 하면서 다음 작업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그런데 그때는 다들 그렇게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방송 중단을 하면서 ‘사라지는 게 아니라 6개월만에 돌아오는 것’이라고 했죠.”
- 그런 스트레스가 결국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로 이어진 건가요?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그것도 영향을 줬죠.”
- 이번 음반에서도 이모(Emo) 계열의 영향이 느껴집니다만.
“이번 음반에 이모계열 정서는 전혀 없다고 봐요. 외국의 새로운 장르를 들여오고 싶다는 생각을 예전에는 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전혀 그런 생각 없이 ‘여행’의 느낌만으로 만들었어요. 그러다보니 외국에도 없는 음악이 나온 것 같아요. 그래서 장르 상관없이 내가 갖고 있는 걸로 음악을 하다보면 새로운 음악이 나오는구나, 하는 것도 배웠어요. 그렇게 만들어놓고 장르 이름을 뭐라고 할까 하다가 ‘네이처 파운드’라는 말을 생각해냈어요.”
그의 대답은 약간 의외였다. 사실 이모라는 장르 자체가 이제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애매모호한 장르이기도 하지만, 이모의 특성을 서태지의 음악은 갖고 있다. 물론 ‘이모코어’의 특징인 그로울링은 없어졌다. 그러나 ‘휴먼 드림’의 ‘그런지하고 더러운(서태지의 표현)’ 기타 사운드는 이모의 특징적 기타 톤과 닮았다. 그리고 서태지의 이번 패션 역시 이모의 그것과 닮은 데가 있다. 앞머리를 길러서 한 쪽으로 빗고 스키니진을 입는 등등의 패션이 그렇다. 그러나 어쩌랴. 아티스트가 “이모 아니다”라고 한다면 이모가 아닌 것이다.
- 애초에 생각하던 대로 음반이 나왔습니까.
“이번 음반이 처음에는 무척 후지게 생각했어요. 이렇게 해서 음반을 내겠나 싶을 정도였죠. 그런데 차차 풀리더라고요. 이번에는 외국 스튜디오를 빌리지 않아도 되고 한국에서 다 했으니까, 녹음하고 그 다음날 또 바꿔보고 하면서 조금씩 좋아졌어요. 그러니까 제가 레코딩 엔지니어지아 믹싱 엔지니어죠.”
- 믹싱에 시간을 무척 많이 쓰는 것 같은데요.
“예전에는 하루 한 곡 정도 믹싱을 했어요. 또 믹싱 엔지니어를 두면 그 사람의 의견도 존중해줘야 하니까 아무래도 제가 하고 싶은대로 다 할 수가 없죠. 그래서 이곳 스튜디오 만들고 나서는 ‘믹싱은 시간을 정해두지 말고 하자’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믹싱 할 때는 완벽하다고 생각했는데 한 달 뒤쯤 뭔가 발견하는 경우가 있어요. 이번에 그렇게 시간을 정하지 않고 믹싱을 하다보니 이번 싱글 믹싱에만 한 달이 걸렸어요.”
- 네 곡 믹싱하는 데 한 달이면 정말 엄청난 시간이 들었군요.
“물론 다른 곡들도 기본 믹싱은 돼 있죠.”
- 그러다보니 공백기간은 길어질 수 밖에 없군요. 4년 6개월이면 좀 지나치게 길지 않나요?
“이번 메탈리카 음반이 몇 년 만에 나왔죠?”
- 5년만이죠.
“그보다는 짧은 거잖아요.”
- 그렇지만 메탈리카는 투어를 계속 하고, 실제 공백기간은 그렇게 길지 않죠.”
“한국도 미국처럼 전국 투어가 가능하다면 1년 정도는 활동을 할 수 있겠죠.”
이후 우리는 메탈리카 새 음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서태지는 새 음반에서 타이틀곡 ‘The Day That Never Comes’만 들어봤다고 했다. 그는 “메탈리카 음악은 전부 좋아한다. ‘얼터리카’ 시절 곡들도 모두 좋아한다”고 말했다.
서태지는 2000년 '울트라맨이야' 컴백 후 단독인터뷰 때 사진촬영을 허락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찍은 사진을 직접 골라 보내줬다. 이번에는 "인터뷰를 위해 사진을 따로 찍어서 보내달라"고 특별히 요청했다. 이 사진은 10월 1일 찍은 것으로, 서태지는 신문에 실린 사진과 이 사진을 함께 보내왔었다. /서태지컴퍼니 제공
- 한국에서 작업하면 새로운 음악은 어떻게 접하나요.
“한국에서는 접하기가 어렵죠. 외국에 있을 때는 늘 TV든 라디오든 음악채널을 틀어놓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새 음악을 듣게 되죠. 내가 뭔가 발전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한국에 2년 전에 들어오면서 새 음악을 거의 못 들었어요. 음악을 내가 듣고 즐길 때는 편한데, 작업을 시작하면 내 생활이 차단되면서 일로 음악을 듣게 되니까, 그러면 도움이 안돼요. 새 음반을 내야 한다는 약속을 지키려고 허겁지겁 듣게 되니까 도움이 안돼요. 그래서 휴식시간이 절대로 필요한 거죠.”
(이 부분에서 나는 서태지와 관련해 오랜 논쟁이 돼 온 표절시비의 실마리를 잡은 듯 했다. 그는 "일로 음악을 들으면 도움이 안된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러나 멍청하게도 "일로 음악을 듣는다"라는 것이 무슨 뜻일까 하는 생각은 인터뷰가 끝나고 컴퓨터에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떠올랐다. 결국 그것을 물어보지 못했다. 친한 뮤지션들과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그게 바로 서태지 표절의 증거"라는 과격한 주장부터, "사실 표절로 드러난 게 하나도 없는데, 그냥 남의 음악을 얻으면서 영감을 얻는 수준 아니냐"는 주장까지 다양했다)
- 싱글 두 장과 정규앨범으로 음반을 나눠내는 건 서태지씨 아이디어인가요.
“예. ‘8집 음반은 그렇게 하고 싶었다’고 말하는 게 맞는 얘기일 것 같아요. 한 음반에 7~8곡이 넘으면 일단 제가 집중이 안되고 관리가 안돼요. 그게 제 스타일이에요. 활동을 길게 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새 음악을 전달하는 방법이 그렇게(음반을 나눠서 내는 게) 가장 좋은 방법 아닌가 싶었어요.
- 이미 다 해놓은 음반으로 최대한 우려먹는다는 비판도 있지요.
“우려먹는다는 소리가 있는 건 알아요. 그렇지만 세번에 나눠서 내면서 제 느낌을 신선하게 전달하겠다는 거예요. 두번째 싱글에 나오는 곡들에 대한 팬들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고요. 오히려 팬들이 반응 안좋으면 어떨까 생각도 했는데, 팬들이 지금 다음 싱글을 굉장히 기다리고 있고 그 기다림을 즐기고 있어요. 그런 모든 것들을 생각해볼 때, 잘 선택한 것 같아요.”
- 네 곡 담긴 싱글이 1만1000원 안팎에 팔리는 건 너무 비싸다는 의견도 꽤 있습니다.
“음반 값은 다른 음반보다는 좀 비싸게 팔자고 했어요. 제 음악에 대한 가치를 그렇게 부여하고 싶었습니다. 음반에 쏟아부은 정성, 비용, 시간이 그 정도 가치는 있다고 생각해요. 최종 가격결정은 제가 한 거예요. CD를 10만원 주고도 사고 싶은 사람은 사요. 그런 논쟁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무엇보다 그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이 중요하죠. 5집 때는 러닝타임이 짧은데 비싸다고 했죠. 노래 길이 때문에 음반값이 싸야 한다면, 그림의 경우 극장 간판이 가장 비싸야 한다는 논리와 같아요. 그만큼 자신감이 있으니까 좀 비싸게 받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죠.”
- 공연 제작비를 너무 많이 들이는 것 아닌가요. 물론 관객들이야 좋아하지만 그만큼 티켓값이 올라가고, 같은 무대로 투어하는 게 아니니까 제작비가 빠지지도 않을 텐데요.
“제 공연은 (이윤을) 남기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공연에 들어가는 정성과 비용을 따져보면 다른 공연에 비해서 워낙 들어가는 게 많아요. 제작비가 무모한 수준이죠. 욕심이 과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일단 하고 싶은 것을 한다고 생각해요. 완전히 무리라고 생각되면 중간에 캔슬할 수도 있겠지만 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한 것이죠.”
이 시점에서 우리는 서태지 심포니 공연 준비과정에서 드러났던 문제점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것이 법적으로 서태지가 책임져야 할 문제는 아니었지만, 서태지는 대부분 묻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했다. 그는 “주변에 서태지에게 올바른 조언을 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이 없는 것 아니냐”는 물음에 “컴퍼니 안에 그런 그룹이 있다. 그들이 믿음직하기 때문에 이렇게 큰 공연을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FM 비즈니스를 부를 때 특히 감정이 격앙돼 있었던 것 같은데 혹시 그런 문제가 라이브에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고 묻자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감정이 섞여있었을 수도 있겠다”고 답했다.
- ‘교실 이데아’를 부르기 전 “한국 교육은 지금도 엉망진창”이라고 말했습니다. 교육 문제에 특히 관심이 높은 건가요.
“엉망진창이니까 엉망진창이라고 한 거죠. 실제로 달라진 게 없어요. 젊은 시절에 너무 많은 것을 파괴당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여전히 주입식 교육이고. 제가 중학교 3학년때 느낀 걸 교실이데아로 표현했었어요. 그게 94년인가요. 그 이후에 뭐가 바뀌었지요? 제 팬들 중에는 벌써 어머니가 된 사람도 있고 학생도 있어요. 스스로 바꾸지 않으면 아무도 바꿔주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교실이데아를 부르고 싶었어요. 저 스스로가, 최소한 저한테는 제도교육이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해서 그만뒀기 때문이에요.”
- 가출 경험도 무대 위에서 말했었는데요. 실제 가출을 몇 번이나 했나요.
“가출 횟수는 셀 수 없을 정도예요. 한번 집을 나가면 1, 2주 정도 사라진 적도 있고 며칠 있다가 나타난 적도 있죠. 중2인가 중3때 처음 가출을 한 것 같아요. 음악을 하기 시작했고 학교에서 폭력에 저항하기 시작했을 때였죠. 체벌에 대항하고요. 사랑의 매든 아니든 폭력은 아니다 라고 그때 확신했어요. 중 3때 우리반 한 명이 잘못했다고 반 전체가 매를 맞는 단체기합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때 교실을 나가 버렸어요. 그 이후 우리 반에서 체벌이 사라졌죠. 그날 이후 애들이 저한테 고마워했죠.”
- 중 3때 담임선생님을 존경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 선생님이 그 체벌을 했던 선생님이에요. 그 분이 정말 교육자였죠. 나를 위해서 체벌을 없애버리고 나를 끝까지 이끌어줬죠. 그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중 3때 자퇴했을 거예요. 그때 중학교 졸업사진은 아주 얌전하게 찍었는데, 그것 역시 선생님이 졸업사진은 오랫동안 남는 거니까 그렇게 찍으라고 해서 그랬던 거예요.”
- 자퇴한 뒤의 생활은 어땠습니까.
“같은 시기에 부모님의 체벌도 있었어요. 저는 사춘기였고. 외부에서 음악을 하면서 겉멋도 들고 집이든 학교든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죠. 정말 어린 생각이죠. 학교는 몰라도 집은 버리면 안되는 건데. 돈도 많이 벌겠다고 일도 굉장히 많이 했어요. 그렇지만 일한 것에 비해 번 돈은 정말 적었죠.”
- 문제아였군요.
“쉽게 말해서 양아치였죠. 남자들끼리 서열을 정한다고 싸우고. 학교든 집이든 매만 들으면 나갔으니까요. 그런데 그때 배운게 지금은 많은 도움을 주는 것 같아요. 깡 같은 게 생기고 어떤 일이 생겨도 할 수 있다는 그런 것 말이죠.”
- 그런데 왜 고등학교 때 자퇴를 했죠. 가출벽이 도진 건가요?
“아니에요. 고 1 올라가면서 좀 컸어요. 어렸을 때부터 건축에 관심이 있어서 건축을 공부하려고 공고에 갔죠. 그런데 마음을 다잡고 공부하려고 하는데 음악의 비중이 커지면서 음악에 더 집중하게 된 거죠. 중학교 때만 해도 (남을) 설득하려고 하지 않았지만 학교를 그만 둔 뒤에 부모님 앞에서 열심히 기타를 연습하고 그런 다음에 시나위를 하면서 차를 샀죠. 그때 머리가 너무 길고 하니까 첫 차인 르망을 샀죠. 그게 1989년이었어요.”
- 이른바 문제아에 대한 애정과 동질의식이 있는 건가요.
“그렇죠. 금방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긴 한데. 컴백홈 만들 때 그런 느낌이었어요. 심장이 터질 것 같고, 생명이 태어났는데 부모의 제압이 시작됐고. 물론 집으로 돌아가라는 내용이긴 하지만, 결국 그런 친구들에 대한 제 대답이 컴백홈이에요. 거기에 모든 그런 생각들을 담았어요. 그때는 이렇게 해라 한다고 들을 것도 아니죠. 세상의 중심이 다 자신일 테니까.”
- 서태지 팬들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요. 이번 심포니 공연에서도 서태지의 말투가 싫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른바 매니아만 상대한다는 거죠.
“저는 그냥 제가 하고 싶은 말을 해요. 그래도 ETP나 심포니 때는 존댓말을 많이 한 편이고, 전국 투어를 하면 반말이 90%는 되죠. 기본적으로 관객 대다수가 저보다 나이가 적고 하니까 동아리 같은 느낌이 들어요. 매니아만 상대한다는 말, 일리 있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저에게 집중하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주면 좋겠어요. 저의 말이 안들리는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같은 관객인데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고요. 완전팬들이야 그렇지 않죠.”
- 완전팬은 어떤 팬을 뜻하나요.
“완전팬이란 팬덤 안에서, 닷컴 회원이고 주기적으로 활동하면서 닷컴 내의 대화를 다 알아듣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죠. 공연에서 제 대화의 절반은 그런 팬들을 향한 것이죠. 나머지는 다른 팬들까지 포함하는 것이고요. 물론 팬들을 그룹으로 나눌 수는 없지만요. 그런데 이번 심포니때는 긴장해서 혀가 엉키긴 했어요. 저도 말이 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오늘 왜 이렇게 말이 꼬이지, 하고 생각했죠. 특히 이번 공연은 생각할 게 많아서 그랬던 것 같아요.”
- 완전팬에 대해 이야기하니까 생각이 나네요. 심포니 공연 때, 공연이 다 끝나고 20대로 보이는 여자팬 4명이 나란히 무대를 향해서 “오빠, 이렇게 좋은 공연 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하고 외치더니 큰 절을 하더라고요.
“큰 절 한 번이오? ETP 때는 어떤 남자 관객이 백배를 했대요. 그 분이 ‘만약 서태지가 맨슨과 유즈드를 데리고 오면 백배를 하겠다’고 약속을 했었대요. 그리고 실제 맨슨과 유즈드가 오니까 백배를 했다는 거예요. 그 분은 제 팬은 아닐 수도 있죠. 하여튼 그런 것은 일종의 퍼포먼스라고 봐요.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즐길 줄 아는 정말 재미있는 공연문화라고 생각해요.”
- ETP 앞두고 기자회견에서 “매년 ETP를 열겠다”고 했습니다. 매년 ETP에 참여할 생각인가요. 그리고 만약 참여하지 않는다면 서태지가 없는 ETP에 관객이 줄어들지 않을까요.
“매년 하고 싶다, 라고 말하는 게 정확할 것 같습니다. 아직은 목표 수준이고요. 제가 서지 않아도 관객은 줄지 않는 퀄리티를 유지할 생각이에요.”
- ETP는 오즈페스트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건가요.
“그런 건 아니에요. 물론 오즈페스트를 알고는 있죠. 그래서 오즈페스트와는 좀 다른 페스티벌이 ETP예요. 고품격 도심형 페스티벌이라고 할까요.”
- ETP 이름은 직접 만든 건가요.
“예. 제가 주최를 했기 때문에 제 이름을 넣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어서 ETP라고 했어요. eerie란 단어도 제가 골랐어요.”
- 오즈페스트는 모든 종류의 하드록과 메탈 페스티벌입니다. ETP도 그런 컨셉이 있나요.
“ETP에는 장르적 제한이 전혀 없습니다. 포크나 일렉트로니카 무엇이든 할 수 있지요.”
- 무대에 너무 많은 돈을 들이는 것 아닌가요. 물론 관객들은 좋지만 무대 만드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그 무대로 전국 투어를 할 것도 아니니까 결국 그 부담이 티켓 값으로 올라가지 않습니까.
“좋은 무대를 선사하고 싶은 것이 가장 기본적인 생각이에요.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치로 하고 싶어요. 노력이든 비용이든 음악 하면서 후회없고 모두가 행복할 만한 것을 하고 싶어요. 그러나 중심은 음악이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 한국에도 펜타포트나 쌈싸페, 동두천 같은 페스티벌이 많이 생겼습니다. 이런 무대에 설 생각은 있습니까.
“다른 페스티벌에 서지 않겠다는 건 아니에요. 펜타포트였는지 잘 모르겠는데 주최측에서 혹시 설 수 있겠느냐고 타진해온 적이 있어요. 그렇지만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설 수 없었죠.”
- 이번 음반 출시를 앞두고 마케팅이 화제가 됐습니다. 크롭 서클이며 UFO 같은 것이었죠. 지나친 신비주의라는 얘기도 있었습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귀엽고 재미있는 마케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귀여운 마케팅 맞죠. 크롭 서클, UFO 전부 제 아이디어였고요. 그것이 서태지의 마케팅이라는 것을 마치 발견한 것처럼 처음 블로그에 올린 사람도 우리 스태프예요. 예전부터 미스터리와 여행이 이번 음반의 큰 테마였어요. 음악은 여행, 가사는 미스터리 식으로요.”
- 팬들 사이에는 그래서 이번 싱글은 lie, 다음 싱글은 truth, 그리고 정규앨범은 서태지의 초이스다, 이런 식으로 해석하는 얘기도 있습니다.
“(웃으며)그런가요? 저는 모르겠는데요? 그게 뭘까요?”
- 음악 일반에 관한 질문을 하겠습니다. 이제 디지털 음악시대로 완전히 접어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시장 변화에 대한 서태지씨의 생각은 무엇인가요.
“저는 mp3를 찬성한 사람이었어요. 음악을 공유하고 편하게 들을 수 있는 건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했어요. 320kb 이상으로 mp3를 제대로 인코딩하면 보통 사람들은 CD와 구별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제대로 된 스피커로 320kb 이상으로 인코딩된 mp3 파일을 듣는다면, 일반인이 느끼기에 음질이 CD보다 떨어진다는 것에 저는 동의하지 않아요.”
- 그렇지만 CD가 갖고 있는 매력은 mp3가 대체할 수 없는 것 아닌가요.
“상황은 언제든 달라질 수 있는 것 아닌가요. mp3가 wav 파일로 바뀔 수도 있죠. 그러니까,. wav 파일을 mp3 플레이어처럼 간편하게 담아갖고 다닐 수도 있다는 거죠. 그런 변화를 저는 즐겨요. 그래서 오래 살고 싶어요.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타는 게 제 목표거든요. 기술이 발전하면, 어쩌면 음악을 들을 때 뇌파나 신경세포를 자극하는 시스템도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 과거에 ‘시대유감’이 심의에 걸렸을 때 가사를 왕창 들어낸다든가 ‘내맘이야’의 파격적인 가사라든가 하는 것을 ‘서태지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면, 그 정신은 아직도 유효한가요. 7, 8집을 보면 그런 과격함은 많이 사라진 것 같은데요.
“정신이오? 똘끼 아닌가요? 지금은....모르겠어요. 그렇지만 그런 상황이 오면 제 생각은 똑같을 것 같아요. 7, 8집은 그런 가사가 필요했었죠. 그렇지만 예전같은 가사가 필요하면 또 그럴 것 같아요. 저는 마음은 여전히 10대예요. 중학교 3학년, 15살에 머물고 싶어요. 그때 방황했던 것을 소중하게 생각해요. 이번에 활동하면서 대학생들이 저를 잘 모른다는 말을 듣고 어떻게 그럴 수 있나, 하면서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한창 음악할 때 그 친구들이 몇살이었나 생각해보면 말이죠. 그래서 중고생 팬들을 보면 귀엽죠. 제가 ‘난 알아요’를 부를 때 수정(受精)도 되지 않은 무존재였으니까.”
- ‘난 알아요’는 서태지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노래인가요.
“세상에 나를 알린 노래죠. 의도하지도 않았고 기대하지도 않았었지만요. 습작을 하다가 나온 음반이 1집인데, 그때는 차트에도 들어가지 않겠지 했던 곡이 그렇게 돼버리니까 얼떨떨했어요. 준비도 안됐고. 그때부터 4집까지 그냥 달린 거죠. 그러다가 지쳤고 그래서 아련한 느낌을 갖고 있는 괴물같은 노래죠.”
- 이번 활동이 끝나면 역시 외국으로 가나요.
“외국에 여행하러 갈 것 같아요. 이번 음악작업은 한국에서 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지만요. 창작을 할 때는 자유가 필요해요. 길거리를 돌아다녀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그런 자유요. 길을 가다가 진열장을 봐도, 대중교통을 타도 뭘 느낄 수가 있고 영감을 얻을 수 있거든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걸 하지 못하니까 인풋(input)이 없어요. 인풋이 없으니까 아무 것도 만들어낼 수가 없어요.”
- 한국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건 팬들 때문일텐데, 그렇다면 팬들이 서태지를 구속하는 것인가요.
“나를 구속하는 건 한국이죠. 팬들이 나를 구속하지는 않아요. 다만 그렇게 느끼는 내가 변태죠. 시나위 시절부터 사람들이 나를 보면 깜짝 놀라는 게 정말 미안했어요. 화장실에 가도 머리가 기니까 여자인 줄 알고 깜짝 놀라고. ‘난 알아요’가 이걸 증폭시켰죠. 어느 날 명동에 그냥 옷 구경 하러 갔는데 사람들이 우리를 포위해서 교통이 마비되고 경찰이 끌어내고....차를 한 잔 마셔도 사람들이 웅성웅성 하는 걸, 그런 걸 못 견뎌요. 그래서 혼자 지내는 게 습관이 굳어졌어요. 지금도 밖에 나가면 똑같을 것 같아요.”
- 그럼 2년 전에 한국에 와서 한번도 밖에 나가지 않았단 말인가요.
“스키장에 한 번 가고 아무도 없는 시골에 한 번 놀러가고...그게 전부예요.”
- 밥 먹으러라도 나가지 않나요.
“밥은 시켜 먹거나, 여기서 일하는 아주머니가 해주시죠. 어머니가 오셔서 해주실 때도 있고요.”
- 한국에서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다니다가 얻을 수 있는 영감도 있을 텐데, 그런 걸 못하는 것은 일종의 불행이네요.
“그렇죠.”
- 외국 진출에 대해 물어보겠습니다. 1집에 실린 ‘난 알아요’ 영어버전은 혹시 외국 진출을 염두에 두고 한 건가요.
“아니오. 그건 그냥 영어 랩으로 한번 해보고 싶어서 만들었을 뿐이죠. 그때 랩이란 게 제대로 없었고, 영어로 하는 게 한국말로 하는 것보다 나아보였으니까요. 지금도 미국 진출은 좋은 기회 있으면 해보고 싶어요. 그렇지만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있지는 않아요. 성과가 없을 가능성이 높거든요. 지금은 시기가 아닌 것 같아요. 미국의 메이저 레이블에서 아마도 우리를 알고 있을 거고, 그사람들이 우리를 필요로 한다면 연락이 오겠죠. 한국에서 즐기고 있는 활동을 침해받으면서까지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미국 진출을 시도해보고 싶지는 않아요. 섣불리 하지 않겠다는 생각도 있고요.”
- 인터뷰를 앞두고 서태지 모든 음반을 들어봤더니 과거에 느끼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이를테면 ‘마지막 축제’의 경우 도입부는 완전히 재즈인데요.
“‘마지막 축제’는 처음에 비트를 정하고 큰 그림을 정한 게 아니고, 이것저것 시도하다가 곡이 확정된 것 같아요. 스윙 박자가 되고 인트로는 재즈로 하자 이런 식이었죠. 그런가 하면 ‘하여가’는 처음부터 계획적인 노래였죠. 스래쉬와 국악, 랩을 섞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만든 곡이죠. 제가 음악을 만드는 게 대부분 뭘 하겠다는 식으로 시작하는 게 아니고, 하다 보면 방향이 정해지는 식이에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여러가지 장르가 섞이는 것 같아요.”
- 3집을 보면 정통 스래쉬 곡이 많습니다. 인트로부터 시작해서 말이죠. 서태지가 이런 정통 스래쉬를 했어도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습니다만.
“제가 스래쉬를 제일 좋아하던 시절이 시나위에 있을 때였어요. 그때 그래서 (스래쉬를 하던) 아발란쉬 형들과 합주하면서 한을 풀기도 했죠. 예전에 제일 좋아했던 장르가 스래쉬예요. 그게 하여가 때부터 조금씩 묻어나온 것 같아요. 저한테 많은 시간이 있다면 최고의 스래쉬 음반을 만들 자신이 있어요. 그리고 재즈도 정말 해보고 싶어요. 음악을 만들고 공연할 때 재미있으니까요. 그렇지만 너무 할 일이 많아요. 그 모든 걸 다 할 시간이 없죠.”
- 괴수인디진은 아직 있나요. 계속 뮤지션을 뽑을 계획인가요.
“그럼요. 피아가 있잖아요. 지금은 계획이 없지만 언제나 피아나 넬 같은 팀이 있으면 함께 하고 싶어요.”
- 이번 8집 활동은 언제까지 할 계획인가요.
“딱 정하지는 않았지만 내년을 넘기지는 않을 거예요. 아마도 내년 여름 전에는 마무리하지 않을까 싶어요. 전국 투어를 연말부터 7개 도시 정도 하고. 다음 싱글 발표를 전후해서 그쯤 전국 투어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인터뷰는 4시간30분 가까이 이어졌다. 자리에서 일어나니 시계는 자정을 훌쩍 넘어 있었다. 헤어지면서 그에게 “앞으로 4년 후에나 또 만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웃으며 “그건 좀 길죠?”라고 했다. 그때까지 아무 말도 않고 배석해있던 서태지컴퍼니 직원이 “지금 손님이 2시간째 와서 기다리고 계십니다”라고 말했다. 서태지는 깜짝 놀라며 “시간이 그렇게 됐어?” 하고 말했다. 서태지는 헤어지면서 악수를 청했다. 그는 지하에 남았고, 나를 태운 엘리베이터는 지상으로 올라갔다.
*부록: 탑(안성훈: 서태지밴드 기타리스트) 전화인터뷰: 2008년 10월 2일
“서태지는 개인적으로 고마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기타리스트가 많고 저보다 테크닉도 좋고 뛰어난 사람이 많죠. 제가 어떻게 보면 선택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어요. 세 장의 앨범 활동하면서 두 장 앨범 녹음을 했죠. 그러면서 내가 모자라다는 걸 많이 느꼈습니다. 그래도 밀어내지 않고 후보자 생각하지 않고, 격려해주고 가르쳐주고 했지요. 내가 아니고 다른 뮤지션이 왔으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도 했고. 그런 불안함을 많이 정리해줬어요. 언더에서는 이런 경험 못해서, 그런 면에서 고마운 존재로 생각합니다.
서태지씨는 소문난 그대로 열정적이고 고집스런 사람입니다. 뮤지션이라면 누구나 다 갖고 있는 것이기도 하죠. 노력형이고요. 이미 다 알려져 있는 게 다 사실이에요.
서태지씨는 아무래도 베이시스트가 더 어울리고 멋있지 않나 생각해요. 원래 베이스로 처음 시작한 사람이죠. 테크닉이 장난이 아니에요. 핑거링으로 치는데 파워가 장난 아닙니다. 왜소한 체격이지만, 연주는 체격과 무관해요. 만약 서태지씨한테 베이스만 하라고 했다면 톱클래스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6집 컴백때 태지씨가 몸이 되게 안좋았어요. 컴백공연 전날이었죠. 몸이 아파서 잠을 자야 하는데 그날 잠을 안자고 작업을 했던 기억이 나요. 정말 독종이에요. 이렇게까지 해서 모든 걸 준비하는 걸 보면 정말 프로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인디 멤버 발굴은 인터넷으로 가능해요. 나도 인디 경력이 10년이에요. 매니저 중 한 명이 인디밴드들과 친하고요. 저도 알고 매니저들도 알고. 그래서 멤버 후보 고를 때 1차 동영상 오디션을 보고, 그 다음에 실제 오디션을 하죠.
힘든 점도 있어요. 개인시간이 안 나니까 가족들도 많이 못보고 술자리도 많이 못가고 하죠. 활동 앞두고는 하루 12시간은 연습실에 있어요. 연습은 컴백할 때 한 달 반 정도 해요. ETP도나 심포니 연습은 한달씩 하고요. 멤버들이 밴드를 같이해오던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필(feel)이 맞아야 되고 해서 연습을 많이 해야 하죠. 라이브 자주 안해 봐서 연습이 많이 필요해요. 실제 라이브처럼 거울을 보면서 같이 뛰면서 연습합니다.
지하 연습실에만 있으면 답답하죠. 우리끼리 하는 말로 ‘감금생활’을 하다보면 답답한데, 태지씨는 이게 몸에 밴 것 같아요. 스무살 때부터 이런 생활 하다보니까 말이죠. 벌써 17년이 됐잖아요. 이 밴드에 있으면 욕심이 생겨서 힘든 걸 잊어버리게 돼요. 공연을 해보면 항상 아쉬우니까, 그래서 연습을 하게 되는거죠."
한현우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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