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neTree/T2009. 3. 18.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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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매거진t> 글에 대한 리믹스 버전 쯤 됩니다. <매거진t>의 글과 이 글 중 하나만 읽어도 되고, 두 개를 다 읽어도 상관은 없습니다. 그리고 서태지의 음악에 대한 정식 리뷰는 서태지의 정규 앨범이 발매된 다음에 언젠가 (...) 하겠습니다.


 서 태지와 함께 오케스트라 작업을 하는 지휘자 톨가 카쉬프는 서태지에 대해 “음악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는 뮤지션”이라고 했다. 물론 이는 자신을 고용한 뮤지션에 대한 립 서비스일 수도 있다. 하지만 톨가 카쉬프가 굳이 ‘본질’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흥미롭다. 만약 그것이 단순한 립서비스가 아니라고 전제한다면, 톨가 카쉬프가 언급한 음악의 본질은 서태지가 <MOAI>에서 추구하는 어떤 음악적 방향과 맞물려 있을 가능성이 있다. 톨가 카쉬프의 분야인 클래식, 그 중에서도 오케스트라는 기본적으로 철저한 소리의 논리와 조화를 따지는 분야다. 물론 핵심에는 음악가들의 감성이 담겨있지만, 수십명의 오케스트라가 긴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소리가 어떻게 음악적인 조화를 해치지 않고 어울릴 수 있는가, 그리고 곡이 어떤 식으로 발전해 기승전결을 이루는가에 대한 연구가 필수적이다. 이승환은 국내에서 가장 클래식적인 오케스트라 연주를 보여주는 '천일동안‘, ’그대는 모릅니다‘ 등을 작업할 때 그래미 수상자인 데이빗 캠벨과 함께 작업하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가 철저하게 사운드를 하나하나 쌓는 ’빌드 업‘의 과정이라고 말한바 있다.


논리적인 빌드 업


 그 점에서 <MOAI>, 그 중에서 ‘MOAI'는 철저하게 논리적인 ’빌드업‘의 과정을 따른다. ‘MOAI'의 시작 부분은 지금의 서태지가 생각하는 음악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물방울이 하나 떨어지면서 시작된 소리는 다시 물방울의 파장으로, 그 파장을 이어받는 노이즈가 낀 리듬 프로그래밍으로, 다시 이를 연결하는 이펙트와 박수로 끊임없이 연결된다. 서태지의 이 ’빌드 업‘은 사운드의 멜로디와 리듬, 그리고 톤까지 논리적으로, 혹은 음악적으로 말이 되는지 모두 계산한 뒤에 나올 수 있는 결과물이다. 그것은 마치 음악광이 소녀시대부터 에미넴을 지나 메탈리카에 이르는 곡을 ’일관성‘있게 컴필레이션 앨범으로 만들겠다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런 컴필레이션 앨범을 만들려면 앨범 전체의 기승전결은 물론 곡과 곡의 리듬 의 연결, 사운드의 유사성을 모두 계산해야 한다. 서태지는 그것을 한 곡 안에서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거의 모든 순간에 하고 있다. 보통의 곡이라면 곡 전체의 기승전결을 생각하면 되지만, 'MOAI'는 1초 뒤의 사운드를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아마도 서태지는 수 없이 많은 음악을 들으면서 적당한 소스를 찾고, 그 소리들이 어울릴 때까지 레코딩에 매달렸을 것이다.


 이 철저하게 논리적인 과정이 만들어내는 효과는 자명하다. 그것은 ‘MOAI'와 ’MOAI'의 리믹스 버전의 차이이기도 하다. ‘MOAI'의 리믹스는 ’MOAI'에서 건반, 베이스, 퍼커션 등 어쿠스틱 악기를 거의 배제했다. 남은 것은 잠깐씩 등장하는 피아노 연주 정도다. 그 자리는 건조하게 반복되는 리듬 프로그래밍과 피아노에 비해 더 여린 터치와 맑은 톤으로 연주되는 전자 건반으로 메꿔진다. 그 결과 ‘MOAI'는 훨씬 더 차분하고 평온한 분위기의 곡으로 그려진다. 그 완성도는 불만스럽지만, MBC의 스페셜 방송에서 ’MOAI' 리믹스를 숲에서 찍은 것은 일리있는 선택이다. 어쿠스틱 연주가 곡을 보다 다채롭게 이끌어 가는 'MOAI'의 원곡은 좀 더 동적이지만, ‘MOAI'의 리믹스는 평온하고 정적인 숲의 느낌이 어울린다.


대중성과 실험성을 섞는 방법


 즉, ‘MOAI'에서 곡을 이끌어간 것은 보컬의 멜로디가 아니다. ’MOAI'의 리믹스 버전에서 보다 두드러지게 부각되는 서태지의 보컬 멜로디는 멜로디의 고저가 크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차분하게 진행된다. 후렴구가 되는 ‘내 가슴 속에 남은 건 / 이 낯선 시간들 / 내 눈에 눈물도 이 바다 속으로’는 멜로디가 하나로 연결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 낯선 시간들’과 ‘내 눈에 눈물도 이 바다 속으로’는 차분하게 내리깔 듯 멜로디를 소화한다. 이런 멜로디라인에 힘을 부여하는 것은 어쿠스틱 연주다. 1절의 첫 부분인 ‘네온사인 덫을 뒤로 등진 건’이 곡 안으로 치고 들어온다는 느낌이 드는 건 멜로디 자체의 힘 보다는 곡에 추진력을 얹어주는 피아노와 퍼커션 연주 때문이다. 그리고, 그 두 개의 소리가 등장할 수 있는 건 그 에 앞서 다양한 사운드들이 계속 변화하며 하나씩 쌓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MOAI>에서 서태지가 보여준 그만의 음악적 방법론은 실험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대중적일 수 있는 접점을 찾는다. 만약 서태지가 기존의 일렉트로니카 사운드 안에 대중적인 멜로디를 결합하는 형식이었다면 그것은 대중적이면서 실험적이거나, 대중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실험적일 수 있다. 하지만 <MOAI>에서 조직된 모든 사운드는 그 자체로, 혹은 멜로디를 더욱 대중적으로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MOAI'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복잡한 사운드의 연결은 그 자체로도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기승전결의 구조를 만들지만, 동시에 서태지의 보컬 멜로디가 등장하기 전까지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역할을 한다. 시간을 잘게 쪼개, 그 안에 수많은 소리들로 곡을 ’빌드 업‘시키면서, 차분한 전개를 가진 하나의 멜로디가 꽤나 화려하게 등장할 수 있게 된다. ’T'IKT'AK'에서 메틀 사운드와 하프가 함께 등장하는 것은 실험적이다. 하지만 하프 연주에 이어 강렬한 디스토션 기타가 등장하면서 디스토션 기타의 폭발력이 배가 되는 것은 대중적이다. 이는 그냥 디스토션 기타가 터지는 것과 ‘T'IKT'AK'의 도입부처럼 리듬 프로그래밍을 통해 사운드를 하나씩 쌓았다가 터뜨리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드라마틱한 연출인가하는 것과 같다. 물론 많은 곡들이 그런 형식을 취한다. 하지만 서태지는 이를 극단적으로 짧은 시간 안에 이뤄내고, 그것을 다시 여러차례 반복하면서 하나의 곡을 완성한다. 이는 지난 앨범 <Issue>에서 미완으로 끝났던 몇가지 실험들(이에 대해서는 7집 리뷰 참고)을 완결시킨 것과 같다. <MOAI>에서 주목해야할 건 이 싱글에 담겨 있는 소리들이 어떤 장르, 어떤 뮤지션에서 왔느냐가 아니라, 서태지가 그 모든 사운드들로 자신만의 ’팝‘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 점에서 <MOAI>는 서태지가 지금까지 지적 돼 왔던 해외 뮤지션들의 모방 논란에서 분명히 벗어나기 시작한 결과물로 남을 것이다.


 서 태지의 이런 성과에는 그와 그의 동료들이 완성한 녹음 기술도 포함된다. 서태지는 그 내놓는 앨범마다 높은 완성도의 녹음 수준을 보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의 녹음은 앨범에 담긴 음악적인 방향을 완전히 담아내는데는 모자랐다. 이는 원래의 <Issue>와 서태지의 데뷔 15주년 기념 앨범에 담긴 리마스터링 된 <Issue>를 비교하면 쉽게 알 수 있다. ‘Heffy end'에서 서태지의 목소리 뒤에서 거칠게 울리는 또 다른 목소리는 리마스터링 앨범을 통해서야 뒤에서 쫓아오는 듯한 공간감을 얻는다. 그것은 리마스터링 된 ’Take 2'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리듬 프로그래밍이 원래의 앨범보다 훨씬 어떤 공간속에서 연주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과 같다. <MOAI>의 녹음은 이런 문제들을 해결했다. ‘MOAI'의 첫 부분에서 물 방울이 떨어질 때의 공간감은 녹음기술에 대한 자부심의 표현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이 녹음 기술의 발전은 서태지가 지금 추구하는 음악이 어떤 모습인지 추론 가능하도록 만든다. 사운드의 공간감과 위치가 정확하게 표현되면서, 서태지의 음악은 상당히 3차원적으로 변한다. ’MOAI'의 중반에서 뒤에 물러나 있던 하프 소리가 갑자기 앞으로 튀어나오면서 곡의 전개가 바뀌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소리로 3차원적인 공간을 만들어내는 이런 녹음은 스페셜 앨범의 5집 리마스터링 앨범과도 일맥상통 하는 것으로, 이런 음악들은 듣는 사람의 어떤 감정을 자극하기 보다는 듣는 사람이 곡을 감상하면서 각자의 감정을 느끼는 것에 가깝다.


팬을 위한 음악이 부끄럽지 않은 이유


 이 는 지금 서태지가 추구하는 음악의 방향이 무엇인가를 짐작할 수 있는 하나의 단서다. <MOAI>는 올해 발표된 국내 앨범 중 컴퓨터로 듣는 것과 오디오에서 CD로 듣는 것 사이의 격차가 가장 큰 앨범일 것이다. 이건 음질이 좋다, 나쁘다의 문제가 아니라 아예 그 소리가 들리느냐 마느냐의 문제다. 심지어 나의 경우도 앨범 발매일에 스트리밍으로 돌아다니는 ‘MOAI'를 듣고 ‘이게 전부야?’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물론 제대로 된 온라인 음원 서비스는 스트리밍에 비해 낫기는 하지만, 그것이 일반적인 컴퓨터 스피커의 한계까지 극복해주지는 못한다. <MOAI>를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CD를 사서 음악에 집중하고,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면 몇 번 반복할 정도의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야 한다. 현재 음악계에서 서태지를 비롯한 뮤지션들에게 이런 투자를 할 사람들은 팬 밖에 없다.


 하 지만 듣는 사람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는 서태지의 이런 자세는 지금의 서태지에게는 긍정적이다. 그가 듣는 사람에게 크게 신경쓰지 않는, 혹은 팬을 믿는 음악을 만들어 내면서 그는 자신의 목소리를 꾸미지 않고도 노래를 부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금 자신의 감성을 온전하게 전달할 수 있게 됐다. 그것은 ‘f.m business'와 ’T'IKT'AK'의 차이기도 하다. 'f.m business'에서 거친 기타 연주와 함께 파워풀한 목소리를 내려고 애쓰던 서태지는 ’T'IKT'AK'에서 자신의 목소리 만으로도 충분히 메틀 사운드를 소화할 수 있다. 만약 서태지의 팬층이 지금 정도 선을 유지한다면, 서태지는 과거보다 더 음악적인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MOAI'처럼 이른바 ’타이틀 곡‘ 용 멜로디로는 너무 차분하다 싶을 정도의 곡을 자신의 방법론을 통해 대중적으로 재구성하면서, 그것을 소비자에게 하나 하나 듣도록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팬만을 위한 음악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팬을 대상으로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것과, ’문화 대통령‘이나 ’슈퍼스타‘의 이름값 때문에 모두가 좋아할 만한, 혹은 모두에게 폼나는 음악을 하는 것 사이에 어느쪽이 더 긍정적일지는 분명하다. 서태지는 현재 싱글 15만장, 공연 관객 3만여명 정도의 시장을 유지할 수 있다. 서태지가 영향력에 대한 욕심을 부리거나, 혹은 모든 사람에게 박수 받고 싶지만 않다면, 그는 지금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 하면서 살 수 있다. 실제로 이번 앨범에서 서태지는 서태지에 대한 온갖 담론이 무색할 정도로 음악이 중심이 된 마케팅을 펼치는 중이다. 미스테리 서클과 UFO는 자신의 음악을 소개하기 위한 장치였고, 게릴라 콘서트와 ETP페스트, 톨가 카쉬프와의 협연은 모두 팬들을 위한 공연이다. 남들이 어떻게 보건, 그는 자신이 지금 가장 잘할 수 있는 음악을 들고 나와서,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물론, 그만큼 그는 대중적인 인기를 얻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서태지는 이렇게 말할 거 같다. “그래서 어쩌라고?”


뿌짖뿌짖 쉬크하게


 그 래서, 서태지는 일반적인 음악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감성을 표현한다. 보통의 음악들은 슬프다, 기쁘다 등의 감정을 표현한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서태지가 들려주고자 하는 것은 그런 감정들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감정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를 전달하는 과정에 가깝다. 서태지의 팬들이 <MOAI>에 대해 가장 인상적으로 말하는 것들은 후렴구의 멜로디나 멋진 연주보다는 사운드가 수많은 ‘빌드 업’의 과정을 거쳐 어떤 인상적인 순간을 만들어낼 때다. ‘MOAI'에서 사운드의 변화에 이어 서태지의 목소리가 드디어 등장하는 순간이나, ’MOAI'와 ‘T'IKT'AK'에서 갑자기 하프가 등장해 귀를 번쩍 뜨게 하는 순간들. 그것은 어떤 구체적인 감정 보다는 강한 카타르시스의 순간이다. 논리적으로 차근차근 쌓였던 사운드들이 정점에서 어떤 사운드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 서태지의 팬들이 'Human dream'의 ’뿌짖뿌짖‘을 인상적인 부분으로 꼽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사운드들이 복잡하게 얽혀 들어가던 곡에서 갑자기 ’뿌짖뿌짖‘이 들릴 때의 쾌감 같은 것. <MOAI>에서 ’쉬크‘나 ’뿌짖뿌짖‘처럼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듯한 단어들이 꽤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물론, 그 ’뿌짖뿌짖‘이 인상적일 수 있는 것은 그 뒤에 관악기가 깔리면서 ’뿌짖뿌짖‘의 효과를 배가 시키기 때문이다. 이는 ’TAKE 2'에서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기는 부분이 ‘TV!'지만, 그 부분이 인상을 남기는 것은 그 앞의 복잡 다단한 과정이 있었기 때문인 것과 같다.


 이 는 그동안 그의 독특한 음악적 / 사회적 위치, 혹은 그의 음악에서 사용한 장르들 사이에 감춰진 서태지의 감수성일지도 모른다. 서태지가 ‘필승’에서 비스티 보이즈의 ‘Sabotage'를 가져왔다 하더라도, 그 곡이 대중적으로 먹힐 수 있던 포인트에는 비스티 보이즈의 스타일을 거쳐 ’아름다운 기억들을...‘로 곡을 마무리하는 순간의 카타르시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어떤 장르의 옷을 입건 간에, 그는 거기서 강렬한 카타르시스의 순간들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기쁘다, 슬프다를 떠나 지난한 과정을 거쳐 그 순간에 도착할 때의 희열 같은 것이다. 서태지는 <Issue>에서 멜로디의 구성 파괴를 통해 ’Heffy end'나 ‘Live wire'등에서 각각 그 성격이 다른 카타르시스의 순간을 계속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리고, 서태지는 <MOAI>에서 그 순간을 만들기 위해 사운드를 하나 하나 쌓아나간다. 그것은 이성적인 논리가 만든 감정일 수도 있고, ’MOAI'에서 ‘내 가슴속에 남은 건 이 낯선 시간들’이라고 말하는, 인생의 어느 순간을 지난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어떤 순간을 재구성한 것일 수도 있다. 서태지의 팬들이 ‘MOAI'를 듣고 감격했다고 하는 건 단지 그들이 ’서빠‘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서태지의 행적을 꾸준히 쫓고, 그의 음악을 익숙하게 들어왔던 사람들은 ’MOAI'가 보여주는 어떤 순간을 잡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건 ’네온사인 덫을 뒤로 등진‘채 ’낯선 시간들‘을 맞이하게 됐다는 ‘MOAI'의 가사 그대로, 수많은 이슈와 과대 평가와 과소 평가를 지나 자기 세계로 들어가 버린 사람의 편안한 모습을 볼 때의 기쁨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논리나 이론을 떠나 개인적인 감정만을 이야기한다면, 'MOAI'에는 어떤 복잡한 시기를 지나 무언가 내려놓은 사람의 편안함이 있다. <MOAI>는 서태지의 솔로 음반 중 가장 자신의 감수성을 별다른 화장 없이 그대로 드러낸 작품일지도 모른다.


서태지 담론이 아닌 서태지 엔터테인먼트의 시작


 이 는 역으로 <MOAI>가 비판받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MOAI>, 방법론이 어땠건 간에, 음악이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라면, <MOAI>는 모호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애써 음악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부분은 ‘좋다’ ‘싫다’의 문제에는 적용될 수 있어도 음악의 완성도를 평가하는데는 다소 모호한 기준이 될 수 있다. 서태지가 하나 하나 사운드를 쌓은 끝에 살짝 드러내는 어떤 감정들은 명확한 감정의 상태를 그려내지 않는 대신, 그만큼 세밀한 어떤 순간을 그려내기 때문이다. 그건 음악보다는 마치 그림에 가깝다. 서태지는 그 중에서도 점묘화다. 하나하나 찍어서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엄청난 시간이 들지만, 그만큼 디테일하게, 최대한 자신의 이상에 가까운 모습을 표현할 수 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다면 유희열이 토이 6집을 내면서 했던 말을 상기해도 좋다. “(이번 앨범은) 대중에게 다가가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지금 내 필터를 거친 나의 음악이 내가 생각하는 정답이냐 아니냐에 대한 싸움이었다.” 유희열이 지금 ‘여전히 아름다운지’를 만들지 않고 멜로디의 형식 파괴를 시도한 ‘오늘 서울은 하루 종일 맑음’을 내놨듯, 서태지는 지금 ‘이제는’이나 ‘슬픈아픔’ 대신 ‘MOAI'를 만들었다. 오히려 ’MOAI‘에 대한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부분은 서태지가 내세운 방법론이 얼마나 엄격하게 지켜지고, 그것이 그만의 독창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냈느냐는 것이다. 예를 들어 ’MOAI'는 원곡과 리믹스 모두 후렴구가 등장하는 부분에서 신디사이저를 사용해 곡의 흐름을 끌어 올린다. 이런 전개는 멜로디의 변화를 연결하기 위해 일반 가요에서 많이 쓰이는 부분인데, 서태지 역시 ‘MOAI'에서 작게나마 이 소리를 집어넣어 후렴구의 변화에 이용한다. 그만큼 이부분에서 서태지의 ’네이처 파운드‘가 앞세우는 독창성은 살짝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이 부분이 ’MOAI'의 완성도에 결함을 줄 정도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MOAI'에 대해 디테일한 영역을 건드리지 않고 ’좋다 / 나쁘다‘로 말하거나, 서태지의 이번 음반이 ’잘 팔린다 / 안 팔린다‘고 말하는 것은 지금 그의 음악이나 행보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를 이해하는데도 별다른 도움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서태지를 까느냐 칭송하느냐 자체를 엔터테인먼트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필요하겠지만).


 그 래서, 서태지는 어쩌면 지금이 가장 흥미로운 순간일 수도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해체 이후 서태지는 늘 그를 바라보는 모든 시선들의 경계에 걸쳐 있었다.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서태지는 전혀 다른 얼굴의 사람으로 변했고, 서태지 그 자신도 일정 부분 그런 경계 위에 서 있는 것을 택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듯 했다. 그러나, 서태지가 <MOAI>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팝의 구조 안에 새로운 사운드를 쌓아 들려준 음악은, 그리고 UFO같은 세트를 짓고 한미일의 락 밴드를 불러 ETP페스트를 하고, 톨가 카쉬프를 불러 오케스트라를 조직해 자신의 음악을 하는 모습은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경계를 그어버린 듯 하다. 그는 지금 어떤 대중의 기대나 사회적 맥락과 상관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있다. 그건 적어도 서태지가 MBC <황금어장>의 ‘무릎 팍 도사’에 나와 “저도 똑같은 사람이에요”를 말하는 것 보다는 훨씬 솔직한 모습일 것이다. 1996년 이후 온갖 나라를 떠돌아 다니고, 그 과정에서 보통 인간들의 인생과 전혀 다른 삶을 12년째 살고 있는 인간이 대중과 똑같은 척 하는 것이야말로 가식일 수도 있다. 물론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지금 한국에서 그런 라이프 스타일과 그것을 뒷받침할 자본과 자기만의 독립적인 시장을 가진 채 자기 음악을 하면서 매스미디어의 지속적인 관심을 받을 수 있는 뮤지션은 서태지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 사람이 만들어내는 음악과 ‘UFO'같은 행동들을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일 수 있다. 간단하게 이런 거다. 서태지보다 좋은 음악은 나올 수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 ’이런‘ 음악이 조만간 다시 나올까? 글쎄.

 

글 : 강명석(lennonej@naver.com)

 

[출처:triplecr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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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ineTree]